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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중재가 파업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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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철도노조의 파업이 계속된 3일 부산시 부산진역 야적장에서 급한 수출입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를 철도 대신 화물 차량을 이용해 수송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파업의 피해가 직접 국민에게 돌아가는 공익 사업장들의 그릇된 파업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철도 파업에서 드러났듯이 철도나 비행기 노조 등이 파업에 돌입하면 국민은 볼모가 된다. 국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중재에 나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결로 인해 또다시 파업이 재개되곤 했다.

◆ 원칙과 기준 세워야=지난해 12월 21일 미국 뉴욕 맨해튼교통공사(MTA)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시민과 경제를 볼모로 하는 공공 부문의 파업을 금지한 테일러법을 어긴 단체행동이었다. 노조의 파업이 현실화되자 뉴욕주와 뉴욕시는 신속하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뉴욕 지방법원은 파업 중지명령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또 파업했을 경우 하루당 이틀치의 임금을 반납하도록 하고, 노조에는 파업 하루당 100만 달러의 벌금을 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뉴욕시는 불법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노조와 협상을 하지 않았다. 뉴욕주와 뉴욕시는 노조 집행부에 대한 인신 구속에는 반대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구속은 그들을 순교자로 만들 수 있고 벌금 부과가 더 효과 있다"고 말했다. MTA 노조는 3일 만에 백기투항했다.

한응수 주 뉴욕홍보관은 "선진국은 공공의 질서에 관한 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한다"며 "이런 태도가 노조의 불법행동을 고립시키고, 결국 노조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 온정주의가 재파업 부른다=이번에 파업을 단행한 철도노조는 "해고자 67명 전원 복직"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이들은 1988년.94년.2002년.2003년 파업 때 해고된 사람들이다. 당시 이들은 철도청 소속 공무원이었고, 불법 파업이었다. 전체 해고자 숫자는 원래는 127명이었다. 한데 철도청은 이들 중 60명을 차례차례 복직시켰다. 불법 파업의 책임을 물어놓고 결국은 불문에 부치는 관행을 만든 것이다. 철도공사는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고 했었다. 철도공사는 2일 새벽 노조 측에 "해고자 11명을 복직시키고 일부를 추가 복직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하지만 협상 결렬로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81년 미국 연방항공청(FAA) 관제사 파업 때 미국 정부는 노조 측에 "48시간 안에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응하지 않은 관제사들은 곧바로 해고됐다. 또 일단 해고된 뒤에는 재고용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는 "파업을 끝내는 조건으로 해고자를 다시 복직시키는 등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불법 파업의 사슬을 끊지 못한다"고 말했다.

◆ 정부 개입 금물이다=2000년 10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얼마 앞두고 파업을 벌이자 정부가 곧바로 개입했다.

분규는 곧 해결됐다. 대한항공이 노조의 요구를 다 받아줬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정부의 압력에 어쩔 수 없었다"며 "그 뒤 노조의 요구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선한승 한국노동교육원장은 "파업을 푸는 핵심은 엄정한 법 집행에 있다"며 "정부의 개입은 이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 노사관계를 풀기 위해 정부가 중재하는 등 뒷거래를 하는 순간 노조와의 담합이 불가피하다"며 "결국 노조의 불법을 정당화해 주는 부작용만 낳는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기자<wolsu@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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