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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트럭섬’ 위안부 피해자 실체 사료로 첫 증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남태평양의 일본 해군 기지에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사료로 확인됐다.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는 남태평양의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의 존재를 미군 기록 등을 통해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트럭섬

트럭섬

제주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0km 떨어진 남태평양의 ‘트럭섬(Chuuk Islands)’은 2차대전 때 일본 해군함대의 주요 기지였다. 당시 조선인들이 기지 건설 등을 위해 이 곳으로 강제 동원됐다. 원래 ‘추크’라고 불렸던 지명이 독일군 점령뒤 ‘트루크’로 바뀌었고, 이후 일본군이 ‘트럭’이라고 발음하면서 트럭섬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섬은 미크로네시아 연방에 속해 있다.

트럭섬에 위안부로 끌려간 이복순 할머니의 사진. [자료 서울시]

트럭섬에 위안부로 끌려간 이복순 할머니의 사진. [자료 서울시]

서울시는 당시 미군이 작성한 전투일지, 조선인 위안부들이 귀환 당시 탑승했던 호위함 이키노호의 승선인 명부, 조선인들의 귀환에 대해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등 자료를 발굴해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26명의 실체를 밝혀냈다. 필리핀, 캄보디아 등 일본군 전선에 위안부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지만 남태평양 해군기지에도 위안부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에 발굴된 1946년 3월 2일자 뉴욕타임스 기사 ‘트럭의 일본인들은 포로가 아니다(Japanese On Truk Are Not Prisoners)’는 조선인들이 트럭섬을 떠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기사는 “트럭섬 사령관인 해병 준장 로버트 블레이크에 의해 조선인과 27명의 조선인 위안부들(Comfort Girls)이 보내졌다”며 “블레이크 장군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남아서 미국인을 위해 일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다른 조선인들이 일본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바다에 빠뜨릴 것이라고 두려워했다”고 묘사했다. 이 기사에서는 위안부를 27명으로 기재하고 있는데 이는 아이 3명 중 1명을 위안부로 분류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트럭섬에서 귀환한 조선인에 대해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사진 서울시]

트럭섬에서 귀환한 조선인에 대해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사진 서울시]

전투일지에 따르면 귀환한 총 1만4298명 중 3483명이 조선인이었으며, 그중 군인이 190명, 해군 노무자가 3049명, 민간인이 244명이었다. 그 중 조선인 위안부 26명은 1946년 1월 17일 호위함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귀환했다.

이복순 할머니 이동경로

이복순 할머니 이동경로

이키노호 승선 명부에 위안부 피해자 26명의 이름은 창씨개명된 일본식 이름으로 돼 있어 신원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에 공식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유일하게 트럭섬에 끌려간 고(故)이복순 할머니를 찾는 것을 1차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명부에 포함된 이름 중 대구에 주소지를 둔 ‘히토가와 후쿠준’이 이복순 할머니의 창씨개명 이름일 것으로 보고 추적에 들어갔다.

이키노호에 탑승한 조선인 명부. 서울시는 대구에 주소지를 둔 '히토가와 후쿠준'이 고 이복순 할머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추적에 들어갔다. [자료 서울시]

이키노호에 탑승한 조선인 명부. 서울시는 대구에 주소지를 둔 '히토가와 후쿠준'이 고 이복순 할머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추적에 들어갔다. [자료 서울시]

이복순 할머니는 생전에 구술자료를 남기지 않고, 1993년 12월 정부에 피해를 신고했을 때에도 간략한 피해 내용만 남겨 삶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이 생전 이복순 할머니와 가깝게 지낸 대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이인순 관장에게 트럭섬 위안부 사진을 보여주자, 할머니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며칠 뒤 할머니의 아들도 이 사진이 자신의 어머니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연구팀은 “할머니의 남편 호적이 있는 경북 안동시 길안면사무소 관계자들이 제적등본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할머니의 창씨명과 주소지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돼 있는 자료를 발굴해 이같은 확인 작업에 성공했다.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를 실제로 촬영한 영상을 발굴·공개한 데 이은 성과다. 시는 지난 2년 간 발굴해온 위안부 사료를 바탕으로 내년 1월 단행본을 출판할 계획이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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