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침해" 무릅쓴 극약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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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동안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예고해왔던 토지거래허가제가 마침내 신개발지역을 중심으로 25일부터 발동된다. 토지거래허가제는 제도적 장치가 구비돼 있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재산권 침해라는 문제점이 워낙 커 시행을 주저해 왔던 것이다.
사유재산권의 침해라는 문제점을 무릅쓰고 거래허가제를 발동하는 사태에 이르도록 되기까지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주로 경상수지의 대폭흑자 때문이긴 하지만 시중통화량이 대량 증가한 위에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만도 1조원 정도의 돈이 시중에 풀러나갔다.
그 결과 인플레심리가 고개를 들고 뭉칫돈이 증시와 부동산을 휩쓸고 다녔다.
이미 풍향계는 움직였는데 돈의 물꼬를 죄고 제대로의 흐름을 잡는데 실패한 것이다.
또 정책차원에서도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해서는 개발이익의 환수제도와 양도차익에 대한 누진과세 등 조세적 접근 등 합리적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전대책을 제대로 마련해놓지 못한 결과 때를 놓쳤고 급기야는 토지거래허가제라는 극약처방을 하게된 것이다.
정부의 판단은 아산항·군장지구 등 신개발지역의 땅 값이 1년 새에 50∼1백50% 뛰어 이대로 두면 투기가 전국적으로 불붙을 조짐이기 때문에 무리를 무릅쓰고라도 부동산투기를 잡아야 들뜬 투기분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가제는 국민의 재산권의 직접적 제한이라는 측면에서 적잖은 문제를 지니고있다. 허가제가 실시되면 실정노자를 제외한 토지거래는 사실상 완전히 막힌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만큼 헌법은 사유재산제를 인정하고 민법에도 소유권행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허가제가 실시되면 허가제로 묶인 지역의 주민이나 소유자들 입장에선 그것도 외지인의 토지투기가 한바탕 휩쓸고 간 마당에 우리만 피해를 당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올 것은 당연하다.
우리보다 땅값상승으로 고민이 더 큰 일본이 지난 74년 토지거래허가제를 입법화해놓고 토지 거래신고제·유휴지제는 전국적으로 시행하면서도 이제까지 허가제의 발동만은 못해 온점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딪치는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이번 토지거래허가제 실시로 신개발지역의 투기붐이 멎고 들뜬 경제분위기가 진정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잇따라 특정지역의 추가고시·부동산투기자의 명단공개 등을 시행할 방침이어서 일단 고개를 숙이겠지만 적정통화관리 등 앞으로 경제정책의 건실한 운용여부에 부동산투기의 향방이 걸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부동산투기의 해악은 도덕적 차원은 차지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분배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건전한 근로의욕을 상실시킨다. 남들은 하루아침에 주식이나 땅 투기로 떼돈을 버는데 임금투쟁을 벌여 월급 얼마가 올라봐야 일할 의욕이 난리가 없다.
더구나 우리사회는 투기꾼들이 과거 경험상 항상 득을 보아왔다는 믿음(?) 속에서 투기가 자행되어 온 만큼 이를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한번 환물 투기가 완전한 계산착오에 따른 실패였음을 실증시켜줘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토지거래허가제도 등 사후적 처방보다는 개발이익환수제도·종합토지세제의 도입 등 합리적 제도를 미리미리 마련하고 경제정책의 건전 운영으로 정부스스로가 안정 기조를 흐트리지 않는데 정책의 초점이 모아져야 할 일이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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