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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보호소 안락사율 0%? ‘개공장-펫샵-보호소’ 악순환 끊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울산 울주군 온양읍에 있는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 전경. 이곳의 보호 동물 적정 마릿수는 200마리 정도지만 407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온양읍에 있는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 전경. 이곳의 보호 동물 적정 마릿수는 200마리 정도지만 407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지난 6일 오후 3시 울산 울주군 온양읍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 앞. 인적 드문 2차선 도로 옆으로 낡은 철제 대문이 보였다. 차를 세우자 대문 너머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다. 안쪽에 컨테이너 건물로 된 견사(犬舍)가 있었다. 마당에는 분변이 묻은 철제 우리와 스테인리스 자재, 고물들이 쌓여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분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센터의 장모(35·여) 센터장은 “공사 후 정리 중이라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구·군 위탁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 #보호 동물 수 적정 수준 두 배 #“안락사 시키기 어려워 딜레마” #전문가들 “나쁜 환경 방치는 #또 다른 학대, 펫 샵 없애고 #입양 권하는 선행대책 필요”

이곳은 울산의 5개 구·군이 위탁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다. 2012년 문을 열었다. 보호할 수 있는 적정 마릿수가 200마리 정도지만 407마리의 개·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울산에는 이곳 외에도 18개 동물보호센터가 더 있지만 모두 동물병원과 겸하고 있다.

올해 1~11월 울산에서 구조된 2733마리의 유기동물 가운데 1330마리가 이 센터에 맡겨졌다. 반환(주인을 찾는 것)·입양·분양·자연사한 동물을 제외하고 2015년부터 있던 동물들을 더해 407마리가 남았다. 그래도 적정 마릿수의 두 배를 넘는다. 올여름에는 550마리가 있었다. 지난 7월 울산 남구·울주군은 이 센터에 ‘환경 정비’ 시정 명령을 내렸다. 장 센터장은 “개가 너무 많아 청소나 관리가 잘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에 들어서자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다. 최은경 기자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에 들어서자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다. 최은경 기자

울산시는 유기견 한 마리당 10일 기준 소형견 10만원, 대형견 15만원의 보호비를 지원한다. 지원비는 10일까지만 나온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보호한 지 10일이 지나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지자체가 소유권을 갖는다. 이후 입양, 안락사, 동물단체에 다시 분양, 방사 등의 방법으로 처리된다. 전국 유기동물보호센터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도 보통 20~30일 동안 동물을 보호한다.

또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의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에 따르면 전염성과 치사율이 높은 질환에 걸렸거나 건강회복이 불가능한 동물, 치료 비용과 기간을 고려했을 때 추가 보호가 불가능한 동물, 심장질환 등 분양 후에도 지속적 치료가 필요한 동물, 교정이 어려운 행동 장애 등이 있는 동물, 센터 수용 능력 등을 고려해 보호가 어려운 동물은 안락사 대상이다.

하지만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는 입양·분양이 활발하지 않은 데다 안락사 처리를 많이 하지 않아 오래전 보호 동물 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 장 센터장은 “6개월이 지나 주인이 나타나거나 공격성을 띠던 개가 순화되기도 해 안락사시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동물 보호 활동가와 애견인들의 안락사 반대 민원도 부담이다.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 견사 내부. 지난 여름 구·군에서 시정 명령을 받은 뒤 철제 우리를 스텐인리스로 바꾸고 바닥에 타일을 깔았다. 최은경 기자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 견사 내부. 지난 여름 구·군에서 시정 명령을 받은 뒤 철제 우리를 스텐인리스로 바꾸고 바닥에 타일을 깔았다. 최은경 기자

마릿수가 점점 늘자 일부 봉사자들이 동물 관리, 위생상태를 문제 삼기도 했다. 장 센터장은 “한 마리라도 더 입양·분양하려고 데리고 있었는데 도저히 관리가 안 돼 올해 159마리를 안락사시켰다”며 “시정 명령을 받고 철제 우리를 스텐인리스로 바꾸고 시멘트 바닥에 타일을 까는 등 환경을 개선했다”고 말했다.

울산시 농축산과 관계자는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의 안락사율은 5.7%, 울산시 전체의 안락사율은 10.1%로 전국 평균(20.6%)보다 훨씬 낮다”며 “한 마리라도 더 분양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안락사를 하지 않으면 보호센터 동물 모두 고통받는다”고 말했다. 시는 구·군과 함께 동물보호센터를 지속 관리할 계획이다. 또 이 관계자는 “2018년 완공 예정인 울산 반려동물문화센터와 함께 5년 뒤 시 차원의 유기동물보호소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전·제주·광주 등이 지자체 유기동물보호소를 운영하고 있다.

유기동물 안락사 딜레마는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물단체 회원은 “모 지자체가 위탁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센터는 유기동물을 추가로 받지 않겠다고 해 담당 공무원들이 난감해했다”고 말했다.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유실·유기동물 8만9700마리가 구조돼 보호센터의 보호를 받았다. 전년 대비 9.3%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15.2%가 주인에게 돌아갔고 30.4%가 분양, 25%가 자연사, 19.9%가 안락사했다.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 사무실. 최은경 기자

울산유기동물보호센터 사무실. 최은경 기자

전문가들은 유기동물 안락사와 관련해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성기창 한국동물매개치료연맹 회장(수의사)은 “안락사를 시키지 않아 수용 공간이 좁아지면 결국 동물 복지가 더 나빠진다”며 안락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안락사시키는 수의사가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동물학자·변호사·수의사·시민단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공청회를 열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5월 대만의 한 시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를 담당하던 수의사가 개 700마리를 안락사시켰다는 것을 밝힌 뒤 비난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후 대만에서 유기동물 안락사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이 발효됐다.

동물권 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는 “대만은 동물을 애완동물 가게에서 잘 사지 않는 등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르다”며 “유기동물 안락사를 무조건 반대하기 전에 폐사, 묻지마 입양 등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묻지마 입양은 일부 지자체가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주변 민원 때문에 개농장 등에 개들을 입양 보내는 행태를 말한다. 박 대표는 “이런 일이 없게 안락사를 하되 제대로 관리·감독하고 안락사보다 입양을 많이 보낼 수 있는 사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안락사를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면서도 “고통스러운 환경에 내버려 두는 행위 또한 학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이들이 제시하는 대책은 애견 번식장인 ‘강아지 공장’을 줄이고 유럽처럼 소규모 브리더(Breeder, 번식자·사육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또 동물을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유기동물 안락사가 없는 독일은 애완동물 가게가 없어 보호소에서 동물을 입양해 기른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입양을 활성화하려면 유기동물보호소를 혐오시설이 아닌 깨끗하고 쾌적한 동물복지시설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동물을 애완동물 가게,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사고 쉽게 버려 유기동물보호센터에 구조되는 현재의 악순환을 끊지 않는 이상 유기동물 안락사율 0%는 너무 먼일”이라고 말했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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