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직한 이미지에 높은 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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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6공화국의 초대내각을 이끌 「새 총리」가 11일 마침내 국민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 동안 「설」만 무성했던 총리 탄생의 비화를 추적해 본다.
노태우 당선자는 다음 정부의 총리와 비서실장을 내정하면서 지금까지의 관례와는 완전히 다르게 발표 즉시 당사자들을 공개적으로 직접 만나 도움을 요청하는 등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스타일을 구사.
노 당선자는 내정 소식을 듣고 삼청동 취임준비 위의 접견실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이현재 전 서울대총장과 홍성철 전 내무장관의 손을 맞잡고 사진기자를 위해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는 이번 인사의 배경을 직접 설명.
노 당선자는 새 정부가 긴급히 해야할 과제가 민주화와 화합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누구하고 일을 해나가야 할 것이냐를 놓고 밤잠도 못 자고 고민도 많이 했다』면서 『많은 분들로부터 여러 좋은 얘기를 듣고 최종적인 결심을 했다』고 설명.
노 당선자는 내정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모시기 어려운데 개인을 희생하고 승낙해준 데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치하.
노 당선자는 신임 총리의 인선배경에 대해 『이 전 총장은 경제전문가며 학자인 만큼 지금 우리의 사정이 경제성장 도중에 여러 위험요소가 있는데 이를 정상적으로 잘 이끌어 줄 수 있다는 점과 젊은이들의 갈등·어려움을 풀어주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
홍 전 내무장관에 대해서는 『외교·행정 등에 두루두루 이바지해 온 중후하고 박식한 분』이라고 치켜세우고 『특히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는 통일문제에 대해 많은 공부도 했고 이 분야에 기여해온 만큼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피력.
노태우 당선자가 총리로 이현재 전 서울대총장을 최종적으로 결심한 것은 발표 당일인 11일 아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구 취임준비위원장은 10일 점심때부터 노 당선자와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삼청동 사가에 들어가 하루종일 두문불출하며 이제까지 물망에 떠올랐던 인물들을 점검, 하오 늦게야 삼청동 준비위로 돌아 왔다.
이 위원장은 준비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용식 대변인·최병렬 준비위원 등에게 노 당선자가 최종적으로 이 전 서울대총장과 이원경 전 외무장관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전한 뒤 이 두 사람 중에 어느 한 명이 낙점 될 경우라도 즉시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으라고 한 뒤 보안을 강조.
실무진들은 그제 서야 그 동안 모아 놓았던 자료와 인명사전 등을 싸들고 모처에서 발표문안 등을 작성.
발표당일인 11일 아침 노 당선자는 이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밤새 생각한 결과 이현재 전 서울대총장으로 결심을 굳혔으니 준비하라』고 지시했고 이 지시에 따라 이병기 보좌 역이 이 전 총장을 접촉.
이 보좌 역은 제3의 장소에서 이 전 총장과 만나 노 당선자의 결심을 통고하고 함께 삼청동 집무실로 직행했는데 이 전 총장은 서울대교수 출신인 김학준 의원이 적극 추천했다는 얘기.
비서실장으로 홍성철 전 내무장관이 결정된 것은 9일 하오. 노 당선자는 결심한 다음날인 9일 상오 홍 전 장관을 삼청동 사가로 불러 결심을 통보했고 이에 따라 실무진들은 비서실장 인선만을 먼저 발표하려 했다가『총리는 놓아두고 비서실장만 발표하는 것이 모양이 좋지 않다』는 반대가 있어 발표를 하루 늦추기로 결정.
관계자는 노 당선자가 선거운동기간 중 이북 5도민 등 실향민을 자주 만나는 과정에서 홍 전 장관을 주의 깊게 보게 됐었다면서 『내무장관 시절 행정능력이 평가받았다는 점과 장관시절 내무부의 권위주의를 없애려고 애섰던 사람으로 평판이 나있어 더욱 솔깃해졌다』는 후문.
특히 그가 과거 정일권 총리 때 명 비서실장으로 보좌했던 경험이 있어 노 당선자가 구상하는 국민 속의 청와대 상을 정착시킬 적임자로 낙점.
총리인선은 최종 순간까지 진통에 진통을 거듭.
노 당선자는 그 동안 각계 원로와의 접촉 및 준비 위가 마련해준 자료를 놓고 5∼6명 선으로 최종 대상자를 1차 압축시켰으며 그 중에서도 S씨를 가장 심중에 둔 채 9일 밤 청와대를 방문, 전두환 대통령과 최종 상의했다는 후문.
그러나 이 과정에서 S씨는 과거 사생활에 옥에 티 격인 어떤 문제가 있었음이 뒤늦게 지적돼 인선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
이 전 서울대총장의 경우 노 당선자가 그 동안 접촉한 사실이 없어 당초 하마 평엔 오르지 않았으나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는 꾸준히 오르내린 인물.
인물난으로 인선에 진통이 계속되자 일부에서 당내 인사를 기용하자는 의견도 돌았으나 후계 구도 등이 결정 안된 상황에 특정인이 부각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으로 당내인사는 일찍부터 배제.
한 측근은 『군인출신이 아니고 정치력. 행정력을 지니면서 때묻지 않은 참신한 인물을 막상 고르려니 진짜 인물난이더라』면서 『결국 참신함과 행정력을 감안하려 하니 대학총장 출신이 무난하지 않느냐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졌다』고 전언.「학계출신」에 대해서는 노 당선자의 주변 일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5공화국 중반기 때 학계출신을 써 보았으나 모두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선례를 들어 「위험부담」을 강조.
그러나 또 다른 측근들은 한국의 독특한 정치문화로 보아 정치권에 잠시라도 몸을 걸쳤으면 신선한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들면서 정치력 문제는 대통령이 권한을 주느냐에 달린 만큼 「이미지」에 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는 진언을 했다는 것.
이에 따라 당초 학계출신이 밀려난 듯 하다가 결심 「막바지 단계」에서 강력 부상, 이현재 전 서울대총장·현승종 한림대 총장(전 성대총장)·이용희 교수 등이 집중 거명 됐는데 이들은 「강직」「소신」「청렴」 이미지를 나름대로 구축하고 있어 크게 주목대상.
특히 이 전 총장은 85년 미 문화원점거 농성사태 주동학생처벌이 미흡했다는 점과 관련, 문교부와 마찰을 빚어 사퇴해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며 총장퇴임 후에도 학자의 면모를 보인 것이 높이 평가됐다는 것.
현 총장은 상당히 유력했으나 비서실장으로 일찌감치 내정된 홍성철씨와 함께 이북 출신이어서 배제된 케이스. 한 요직 자는 『두 사람이 중복돼서…』라며 아쉬운 표정.
비 영남출신 중진·원로급 인사들도 이번 인선과정에서 중점 거명 됐는데 노 당선자는 이들에 대해 일일이 묻고 개인적인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
하마 평에 올랐던 인물은 신두영 전 감사원장. 김재순 샘터사 사장 (구 공화당 원내총무)· 신형식 전 건설장관·고재필 전 보사장관·윤성민 전 국방장관·박병권 전 국방장관·이한빈 전 부총리 등.
신 전 감사원장은 현직 시절 「강직」함과 퇴직 후 「낙향」(공주)했다는 드문「자기관리」가 점수를 받았으며, 신 전 건설장관은 호남출신 배려로 주목을 받았으나 장관시절 평점과 12대 총선 낙선이 「고려요소」가 됐다는 것.
김 샘터 사 사장은 신문 기고 등 정력적인 여론조성 역할로 관심을 모았으나 오랜 정치경력(50년대 야당, 3공화국 공화)이 역설적으로 「부담」이 됐다는 후문. 그러나 민화 위 등에서 보인 정치적 능력과 새 정부에 대한 협력이 높이 평가돼 「딴 곳에 긴히 쓸 것」이라는 것인데 국회요직에 기용될 것이라는 관측.
고 전 보사 장관은 고령 (75), 박·윤 전 국방장관은 군 출신 등으로 각각 제외.
노 당선자가 처음에 집중 관심을 갖고 본격 교섭에 나섰던 인물은 김준엽 전 고대총장.
노 당선자는 김 전 총장을 총리 감의 하나로 지목하고 우선 민화 위 위원장으로 기용하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차질.
이 과정에서 노 당선자는 삼고초려의 자세로 직·간접으로 교섭에 나섰으며 민화 위 위원장으로의 영입실패 후에도 총리직을 염두에 두고 계속 함께 일할 의사를 타진했으나 김 전 총장은 끝내 고사. 김 전 초장은『학계에 남고 싶다』『업적을 남겨야 되는데 능력이 부족하다』는 표현을 통해 이를 완곡히 거절했는데 노 당선자 측근으로부터 총리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자신의 의지를 지키게 해줘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는 후문.
이번 총리인선은 출발부터 「제한」에 부딪쳐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중론.
노 당선자는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총리·민정당 대표위원·국회의장 등 소위 「빅 드리」 (Big Three)자리에 누구를 앉힐 것인가 고심했는데 대표위원에 영남 (경북 문경) 출신 채문식 고문을 임명함으로써 국무총리는 비 영남인사 기용이 제1원칙으로 굳어졌다는 것.
또 문민 성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출범 초기는 군인출신이 적절치 않다는 얘기가 「상식」 이 돼버려 경남 북과 군 출신 아닌 인물 찾기에 박차.
노 당선자는 지난달 18일 삼청동 집무실에 입주할 때 기자들과 만나 인사쇄신과 관련, 『국민들의 소망이 잘 반영될 수 있는데 기준을 두겠다』고 했으며 이 자리에서 『「TK마피아」 (대구·경북 고 출신)를 썻다는 얘기를 듣지 말라』고 한 당시 언론의 논조에 대해『잘 알고 있다』는 말로 관심을 표명했는데 노 당선자는 이때 총리인선의 기준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는 것.
이에 따라 경북고 선배인 이원경 외무장관 (민정 당 후원회장)은 당대표와 총리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탈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
이 전 외무장관에 대해서는 노 당선자 자신은 물론 당 내외에서「최고 적임자」라는 말을 서슴지 않아 매우 아쉬워하는 표정.
노 당선자는 인선과정에서 사적으로 수집한 인사자료와 삼청동 집무실·대통령 취임준비 위가 마련한 자료 등 인물 천거와 관련한 자료를 총동원, 「백지상태」에서 출발했다는 것.
취임준비 위는 관련인물을 「요직기용 용」과 「자문대상 용」으로 나눠 2백여 명의 인물을 추려 성향·경력·주변평가 등에 관한 정보를 수록, 제출했다는 것.
노 당선자는 이 같은 자료들을 기준으로 잠행 속에 「사람 만나기」에 집중, 금년 들어 1백여 명의 인물을 주로 1대1 면담형식으로 만났다는 것.
노 당선자는 자신의 의중은 내색하지 않은 채 『그 사람 어떠냐』『어떤 평가를 받고 있느냐』는 등 여러 각도에서 점검했다는 것.
노 당선자는 총무처로부터 1급 이상의 공무원 명단과 국영기업체 임원 명단을 제출 받아 일일이 검토했으나 메모지 한 장 집무실에 남기지 않아 아무도 노 당선자가 누구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 추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후문.

<문창극·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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