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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관심 높은 가야史 예산, 청와대는 최소화했는데 국회가 늘린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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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본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본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예산이 확정된 뒤 여야 실세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챙겼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문화재청의 ‘가야문화권 고대문화연구’ 예산도 당초 정부안인 22억2500만원에서 10억원이 증액된 32억2500만원으로 늘었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사업 예산을 넣거나 늘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할 때부터 넣거나 ▶국회가 예산안을 심의할 때 증액하는 방법이다.

 가야사(史) 관련 예산은 정부 예산안부터 반영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지난 6월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스스로도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며 가야사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가야사 복원은)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며 “국정기획위원회가 놓치고 나면 (국정)과제로 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이번 회의에 충분히 반영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실제 국정기획위원회는 100대 과제 중 67번째인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의 주요 내용에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를 포함시켰다.

 이에 문화재청은 지난 9월 4일 새해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영·호남 가야 문화권 유적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기초자료를 확충하고, 발굴과 정비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22억2500만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없던 예산을 신규 편성한 것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사업에 편성하는 예산 치고는 큰 액수가 아니었다.

 문화재청은 왜 그랬을까. 정부 관계자는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고, 학자들도 지적한 것처럼 역사에 권력이 개입하는 것처럼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일단 가야사에 관한 고증을 확실히 하는 게 필요해 예산을 최소화 했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통령의 발언 뒤 논란이 일었고, 역사학계에선 정부의 개입에 우려를 표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영·호남의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가야 관련 사업에 뛰어든 것은 청와대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금관가야의 경남 김해뿐 아니라 대가야의 경북 고령 등이 큰 관심을 보였고, 전남 구례·여수·광양 등도 적극적이었다. 송하진 전북지사는 지난달 25일 전북 장수군 번암면 봉화산 치재에서 전북 동부지역에 기반을 뒀던 가야세력을 하나로 묶어 ‘전북가야’라고 명명한 뒤 고사까지 지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내년 6월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각 지자체가 가야사를 역사 복원이 아닌 개발사업처럼 진행하려 하는 것도 우려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공개 발언 이후 따로 가야사 예산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뜻을 살리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야사 예산을 단계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회는 결국 10억원을 늘려 가야사 예산을 편성했다. 45%의 인상률을 기록한 만큼 결코 적잖은 증액이었다. 국회의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증액 방법을 택한 것이다. 가야사 예산을 누가 늘렸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가야 역사 문화권 연구·조사 및 정비와 지역발전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에 여야 의원 28명이 서명할 정도로 가야사 관련 지역구 의원들의 관심은 크다.

 게다가 금관가야의 중심 지역이었던 경남 김해시는 문 대통령의 측근인 김경수(김해을)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김 의원은 지난 10월 추석 연휴 때 지역구 주민에게 발송한 의정보고에 ‘가야사 복원 가야불교 학술대회 개최’ 사실을 알리며 “가야 역사 문화유산 복원이 100대 국정과제로 채택된 만큼 가야 역사 문화유산 복원과 재조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의정활동을 해 나가겠다”고 적었다. 김 의원과 옆 지역구의 민홍철(김해을) 민주당 의원은 총선 때 가야사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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