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인 수도권 전셋값 … 아파트 공급과잉 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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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달 말 서울 노원구 중계동 주공10단지 전용면적 58㎡가 전세보증금 2억8000만원에 계약됐다. 2~3개월 전보다 4000만~5000만원 내렸다. 전세 매물은 6~7개 나와 있고, 2억7000만원짜리 급전세도 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동천현대홈타운 2차 전용 84㎡도 지난 9월보다 3000만원 내린 3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진다. 중계동 을지공인 서재필 대표는 “예년 이맘때는 전세 물건이 없어서 난리였는데, 요즘엔 매물이 있어도 전세가 잘 안 나간다”고 말했다.

올 들어 1.59% 올라 5년내 최저 #일부 지역, 최근 수천만원 떨어져 #입주 물량은 전년 대비 42% 급증 #서울 강남권은 오름세 지속 예상

올해 강세를 보인 집값과 달리 수도권 아파트 전세 시장이 잠잠하다. 전셋값 상승세가 확연하게 꺾이고, 일부 지역에선 전셋값이 2~3개월 만에 수천만원씩 떨어진 아파트가 나온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5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보다 0.01% 상승하는 데 그쳤다. 지난 2월 6일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올해 1~11월로 보면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1.59% 올랐다. 지난해 1~11월의 상승률(2.82%)보다 둔화했다. 2012년(11월까지 0.12%)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경기(1.16%)·인천(1.88%)은 물론 서울(2.66%)의 전셋값 상승세도 지난해보다 누그러졌다. 특히 도봉(0.2%)·노원(0.67%) 등의 상승률이 낮았다. 경기도에선 화성·용인 등이 약세다.

전세 시장 안정세는 아파트 입주물량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에서 입주를 마쳤거나 할 예정인 아파트는 17만4000여 가구에 달한다. 지난해보다 42% 급증했다. 서울 입주물량은 2만7000여 가구로 지난해(2만5000여 가구)와 별 차이 안 나지만, 경기도는 13만여 가구로 1년 새 47% 늘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입주물량 증가로 전세 공급량이 늘어난 데다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러야 하는 집주인이 싼 매물을 내놓으면서 전세 시장이 안정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집계하는 수도권 전세수급지수도 지난달 120.6으로, 2009년 4월(112.3) 이후 최저다. 이 지수는 기준치가 100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수요가 공급보다 적다는 뜻이다. 김균표 국민은행 부동산금융부 차장은 “전세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고 공급은 늘어 매물난이 완화됐다”고 말했다. 입주물량이 크게 늘지 않은 서울의 경우 지난 2~3년간 ‘갭 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방식)가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갭 투자 물건들은 투자 목적이 대부분이라 전세 만기 때 다시 전세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전셋값이 안정세를 보인 이유”라고 말했다.

세입자들이 기존 전셋집에 눌러앉는 것도 전세 시장이 조용한 이유 중 하나다. 전세 재계약은 통상 시세보다 약간 낮은 선에서 이뤄진다. 양천구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전셋값이 오를 대로 오른 데다 내년 부동산 경기가 위축될 것으로 보고 2년 더 살겠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전체로 보면 전셋값 안정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경기권 등 일부에선 하락 전망도 나온다. 공급과잉 우려가 높아서다. 부동산114는 내년 경기도에 16만여 가구가 입주할 것으로 추정했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올해보다 25%가량 많다. 집값 전망도 불확실해 전셋값 상승을 견인하기 어렵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동탄2신도시와 김포, 용인 같이 입주물량이 집중되는 지역에서는 ‘역전세난’(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전세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의견이 있다. 김규정 위원은 “서울은 입주물량이 늘긴 하지만 전체적인 공급량이 수요보다 적고, 재건축·재개발 이주 수요와 학군 수요가 움직일 수 있어 전셋값이 소폭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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