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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노래비 하나 못 바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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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60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자리를 함께 한 박태현(왼쪽)·안익태 선생.

오늘 3·1절 87주년
3·1절을 앞둔 28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사우 앞에서 '아우내장터 봉화제'가 열렸다. 횃불을 든 참가자들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전국에서 태극기 나눠주기와 독립만세를 외치는 거리행진 등이 펼쳐졌다. [연합뉴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해마다 3월 1일이면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지는 삼일절 노래다. 그러나 이 노래의 작곡가가 고(故) 박태현(1907~93년) 선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생은 정부의 위촉으로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이 쓴 가사에 곡을 붙였다. '한글날 노래'도 그가 작곡했다.

국경일과 관련된 노래 이외에도 선생은 가곡.동요 등 150여 곡을 남겼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로 시작되는 '태극기'는 한국전쟁 때 만들었다.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코끼리(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도 그의 작품이다. 박태현 선생은 애국가를 작곡한 고 안익태 선생의 평양 숭실전문학교 1년 후배로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첼로를 전공했다.

37년에 첫 '동요작품집'을 냈고, 66년에는 '여성스트링 오케스트라'(88년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로 개칭)를 창단했다. 77년에 제1회 아동음악상, 89년에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았고, 200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그러나 그는 잊혀져 가고 있다. 그 흔한 노래비나 기념비 하나 없다. 장남 계성(70.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선친이 남긴 150여 곡의 육필 악보와 안익태 선생과 찍은 사진 등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며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외치지만 이 같은 역사적 인물을 기리고 자료를 보존하는 것에는 관심 없는 모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성씨는 부친이 타계한 지 4년 만인 97년 직접 기념비 건립에 나섰다. 수소문 끝에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기념비를 세워도 좋다는 답을 받아냈다. 그러나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묘비도 아닌데 유족이 사재를 털어 비문까지 써가며 노래비를 세울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독립기념관에라도 삼일절 노래비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성남지부가 99년부터 해마다 '박태현 음악제'를 여는 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박 선생은 80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말년을 성남에서 보냈다. 지난해 만들어진 '박태현기념사업회' 김성태(62) 회장은 "성남의 문화인물인 박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필요한 경비 5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 회원과 지역 음악인들은 1일 오전 박태현 선생이 잠들어 있는 성남 남서울공원으로 간다. 묘소 앞에서 삼일절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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