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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살레 전 예멘 대통령, 카다피처럼 되지 않으려 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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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엘리제궁을 방문한 알리 압둘라 살레 당시 예멘 대통령. [AFP=연합뉴스]

2006년 11월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엘리제궁을 방문한 알리 압둘라 살레 당시 예멘 대통령. [AFP=연합뉴스]

카다피처럼 되지 않으려했던 살레의 최후 

33년의 권좌에서 쫓겨난 뒤 내전을 통해 권토중래를 노려온 알리 압둘라 살레(75) 전 예멘 대통령이 후티 반군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후티 반군 "수도 사나 탈출 중에 총격 살해" #2012년 '아랍의 봄' 때 축출된 33년 독재자 #내전 틈타 반군과 손잡고 권력 복귀 노리다 #카다피와 비슷하게 반대파에 잡혀 살해돼

4일(현지시간)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방송 등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이날 살레 전 대통령을 지칭해 "반역자들의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후티 반군은 또 "살레가 이끄는 다수의 범죄 지지자들도 사망했다"고 전했다. CNN 등도 살레 측 고위 간부를 인용해 살레 전 대통령이 수도 사나에서 살해됐다고 전했다.

4일 예멘 반군에 의해 총격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피살 영상 속 이미지. [AFP=연합뉴스]

4일 예멘 반군에 의해 총격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피살 영상 속 이미지. [AFP=연합뉴스]

후티 반군은 천으로 덮여 있는 살레의 시신이 찍힌 영상도 소셜미디어 등에 공개했다. CNN은 신원 확인이 되지 않는 시신 주변에서 무장 대원들이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장면도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살레는 전날 밤 후티 반군과의 파트너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공식 선언하고 사나 외곽에서 탈출하려다가 피살된 것으로 보인다. 반군 측은 "우리 대원들이 로켓추진유탄발사기(RPG)로 탈출 차량을 세운 후 그의 머리에 총탄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2012년 ‘아랍의 봄’ 때 유일하게 유혈사태 없이 권좌에서 내려왔던 살레는 여느 독재자들처럼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됐다. 살레와 후티 반군과의 관계 단절로 혼란이 가중돼온 예멘 내전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알아지즈 국왕과 만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당시 예멘 대통령(왼쪽). [AP=연합뉴스]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알아지즈 국왕과 만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당시 예멘 대통령(왼쪽). [AP=연합뉴스]

“그는 카다피가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목숨을 놓고) 게임을 할 수는 없었을 테다.”

2012년 걸프협력협의회(GCC)가 마련한 권력 이양안에 살레가 서명했을 때 압둘라 알사이디 전 유엔 주재 예멘 대사가 뉴욕타임스(NYT)에 한 말이다. 당시 살레는 GCC의 중재에 따라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부통령에게 권력을 넘기고 90일 내 대선을 치르기로 약속했다. 대신 살레와 가족, 측근들은 면책권을 약속받았다.

당시 살레가 권력 이양을 결심한 데는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압박과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카다피는 그 전해인 2011년 민주화 시위를 묵살하며 내전을 벌이다 10월 고향 시르테에서 시민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2010년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와 만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당시 예멘 대통령. [AP=연합뉴스]

2010년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와 만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당시 예멘 대통령. [AP=연합뉴스]

살레는 유혈 시위 끝에 비참한 최후를 맞느니 면책권을 보장 받고 권력을 분점하는 ‘딜’을 기대했음직 하다. 살레는 중재안에 서명하면서 “새 거국내각에 전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했고 민주화 시위를 ‘쿠데타’라고 표현하는 등 권력 의지를 내비쳤다.

그가 다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14년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가 수도(사나)에 진입하면서다. 후티 반군은 2015년 1월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온 하디 대통령과 그의 내각을 내쫓았다. 그러나 하디 정부는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 공습 속에 후티 반군에 반격했고 격화된 내전으로 86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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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는 이런 격변 속에서 후티 반군과 손을 잡고 세력 확장을 기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엔 사우디 주도의 동맹군이 예멘 봉쇄를 풀고 공격을 중단하면 휴전 중재에 나서겠다는 제안도 했다. 그러나 최근 살레를 추종하는 무장 대원들이 후티 반군과 갈등을 겪고 갈라서면서 사나에서 양측간 전투가 벌어졌다.

이런 혼란을 틈타 후티 반군을 피해 사나를 탈출하려던 살레는 결국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카다피와 다르지 않은 최후’를 맞고야 말았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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