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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낚싯배 속 14명 중 11명 사인은…익사? 저체온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경과 해군이 지난 3일 오전 낚싯배 전복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해경과 해군이 지난 3일 오전 낚싯배 전복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충돌 사고로 전복된 낚싯배 선창1호에서 숨진 낚시객들의 사인을 놓고 다양한 주장과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숨진 13명 가운데 11명은 뒤집힌 배 안 선실에서, 2명은 바다에서 표류하다 각각 발견됐다.
해경은 4일 “정확한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3일 오후 시신 8구에 대한 부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수일 후 나올 전망이다.

충돌 직후 배 순식간 뒤집혀 익사했을 수도 #수온 7∼8도 찬바다 갇혀 저체온증 가능성 #강풍에 추운 날씨, 대부분 선실에 대기 중 #배 못 빠져나온 14명 중 11명 참변 당해 #수온 4.5~10도 30분 이상 노출되면 위험 #사망자 8명 국과수에서 부검, 사인 규명

이와 관련, 익사 또는 저체온증 가운데 하나로 사인이 가려질 전망이라는 의견이 많다. 사고 당시 낚싯배인 선창1호를 급유선 명진15호가 충돌하면서 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이 사고로 승객들이 선실에 갇힌 점으로 볼 때 익사했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7-8도 정도의 찬 바닷물에다 비교적 강한 바람이 불면서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 점 등으로 인한 저체온증도 사인이 됐을 가능성도 나온다.

해경과 해군이 지난 3일 오전 낚싯배 전복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해경과 해군이 지난 3일 오전 낚싯배 전복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번 사고 후 낚싯배 승객이 신고한 지 33분 만인 오전 6시 42분에 해경이 현장에 도착했다. 뒤집힌 배 안에 14명이 있었고, 이 중 11명이 숨졌다. 낚싯배는 출항 후 날씨가 추워서 승객 대부분이 선실에 있었고, 이 상태에서 갑자기 충돌사고가 발생하면서 강한 충격 때문에 배가 뒤집혔다. 이에 승객들이 미처 배 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인천 낚싯배 선창1호에서 해경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해경]

인천 낚싯배 선창1호에서 해경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해경]

황준현 인천해양경찰서장 지난 3일 브리핑에서 “배 안에 이미 물이 찼기 때문에 구조대가 들어가 구조했으나 의식불명으로 판단했다. (11명은 당시)모두 사망했다”고 말했다. 해경은 선창1호 왼쪽 뒷부분(자동차로 치면 왼쪽 뒷바퀴)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을 보면 충돌 당시 상당한 충격을 받고 순식간에 배가 뒤집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저체온증으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해경에 따르면 사고 당시 바닷물 온도는 섭씨 7~8도, 풍속은 초속 8~11m였고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요건이면 저체온증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저체온증은 중심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중심체온은 항문에 체온계를 넣어 측정한다.

미국 수색·구조 TF의 ‘차가운 물 생존 기준’에 따르면 수온 4.5~10도에서 30~60분 노출되면 탈진하거나 의식을 잃는다. 1~3시간 내 구조 해야 생존할 수 있다.
엄태환 을지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겨울철 바다에 빠지면 체온이 떨어져 심장 등 내부 장기의 기능 유지가 어렵게 된다”며 “체온이 섭씨 31도 이하로 떨어지면 의식이 혼미해져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경준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물에 빠진 상태에서 강한 바람까지 불었으면 물기가 날아가면서 체온이 더 빨리 떨어졌을 것”이라며 “구조해서 도움을 주기 전에 이미 환자 상태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체온이 35로 이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근육이 심하게 떨리는데 32도가 되면 떨림 현상이 없어지고 환자 의식이 없어진다”며 “체온이 28~29도로 떨어지면 심정지가 온다”고 말했다.

선창1호 사고 지점. 그래픽=박춘환 기자

선창1호 사고 지점. 그래픽=박춘환 기자

송 교수는 “겨울 바다에 빠졌을 때 저체온증을 늦추기 위해 조난자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며 “얼마나 구조를 빨리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홍기정 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소아·노인이거나 고혈압·심장병·당뇨·뇌졸중 등이 있는 만성질환자일 경우 체온 유지 기능이 떨어져 있어 저체온증에 더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는 뒤집힌 배 안의 ‘에어포켓’에서 1시간 30분 이상을 버티다 구조된 이들도 3명이 있다. 이는 11명의 사망자들이 저체온증으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는 분석도 있다. 에어포켓은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 물에 잠기지 않아 공기층이 형성돼 있는 곳을 말한다.

인천 낚싯배 선창1호에서 수습한 시신을 구조대가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낚싯배 선창1호에서 수습한 시신을 구조대가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심모(31)씨 등 3명은 뒤집힌 선창1호 내부 조타실의 에어포켓에서 기다리다가 오전 7시 43분 해경 인천구조대에 의해 구조됐다. 해경 관계자는 “선창1호가 섬유강화플라스틱(FRP) 재질이어서 충돌 후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일부는 수면에 떠 있었다”며 “잠수능력이 있는 인천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뒤 에어포켓에서 버티던 생존자 3명을 구조했다”고 말했다.

배가 뒤집히면서 미처 탈출할 겨를이 없어 익사했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김윤섭 한국해양구조협회 교육연구본부장은 “철판으로 건조한 급유선과 강화섬유재질로 만든 낚싯배가 부딪힐 경우 낚싯배 쪽이 훨씬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며 “충격에 의식을 잃게 되면 익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전익진·김민욱 기자 ijjeon@joongang.co.kr

☞저체온증=정상체온(섭씨 36.5∼37.0도)을 유지하지 못하고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진 경우가 저체온증이다. 겨드랑이나 구강 체온은 저체온시 정확한 중심체온을 반영할 수 없기에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직장체온이 35도 미만일 경우를 저체온증이라 한다. 체온에 따라 32~35도를 경도, 28~32도를 중등도, 28도 미만을 중도 등 3가지 단계로 구분한다. 중심 체온이 29~32도면 의식이 흐려지고 심장 박동과 호흡이 느려진다. 중심 체온이 28도 이하면 중증 저체온증 상태가 돼 심장이 멈추거나, 혈압이 떨어지며 의식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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