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동료 판사를 ‘벌거숭이 임금님’에 빗댄 어느 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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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현직 부장판사가 구속 피의자를 석방한 특정 판사를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하고, ‘재판의 독립’을 강조한 김명수 대법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을 풀어준 서울중앙지법 신광렬 수석부장판사에게 인신공격이 쏟아지고, 이에 김 대법원장이 유감을 표명한 가운데 터진 일이다. ‘재판이 곧 정치’라는 어느 판사의 말처럼 판사 사회가 정치권의 진영 논리에 빠져드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사건의 발단은 김동진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그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구속적부심 석방 결정에 대해 납득하는 법관을 본 적이 없다”며 “(신 판사를) 비판하는 것을 정치행위라는 식으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벌거숭이 임금님을 향해 마치 고상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건 일종의 위선”이라고 했다. 제 허물을 못 보는 동화 속 ‘벌거숭이 임금님’을 끌어들여 신 판사를 사실상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김 대법원장도 겨냥했다. “대법원장님이 침묵했어야 한다.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들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이나 소셜미디어를 가장해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있다”고 경고한 김 대법원장의 발언에 면박을 준 셈이다

절대적인 선(善)이란 없다. 우리 사회는 법을 바탕으로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하든 말든 판사의 판단을 존중하고 승복하기로 약속했다. 자신의 판결에 가하는 평가는 부당한 간섭이라고 반발하면서 다른 판사의 판단은 ‘위선’이라고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 권력으로부터 사법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다른 판사의 결정을 정치적으로 재단하는 법원 내부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온 듯하다. 판결을 정치라고 생각하는 판사가 있다면 법복을 벗고 정치에 뛰어드는 게 본인이나 국민을 위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