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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점 -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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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앙일보 <2017년 11월 18일 26면>
전방위 사정으로 번지는 적폐수사, 균형 잃지 말아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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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의 ‘적폐청산’을 기치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대대적인 정치권 사정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 당초 수사의 핵심은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이른바 ‘댓글’ 사건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유사 행각이었다. 그런데 수사 도중에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이어 여야 정치권으로도 흘러간 사실이 불거졌다.

댓글 사건 수사의 최종 타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수사의 초점도 이 전 대통령이 댓글 사건을 보고받고 지시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어제 효성그룹 경영진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 배경을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다. 겉으로는 ‘30건이나 되는 총수 일가의 내부 고발에 따른 수사’라고 하지만 오래 묵혀온 이 전 대통령 사돈 기업 사건을 이 시기에 꺼내 든 것 자체가 표적 수사라는 합리적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를 제공했다는 국정원장 3명 가운데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데 이어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도 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당 원유철·이우현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강제 수사를 받고 있다. 현재 수사를 받는 야당 의원이 10여 명에 달한다. 이에 비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여권 인사는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뿐이다.

과거 정부의 그림자를 지우는 적폐 수사와 비교할 때 현 정부의 정·관·재계 유력 인사들을 겨냥하는 사정 수사는 실적만큼이나 중요한 게 형평성이다. 2004년 대선 자금 수사,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검찰 수뇌부가 고심한 것도 여야의 형평성 문제였다. 대형 사건 수사가 끝나고 나면 검찰이 으레 ‘정치권의 시녀’라는 말을 들으며 국민 불신이 가중돼 왔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뇌부가 이제부터라도 형평성을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 <2017년 11월 18일 23면>
국정원 특활비 국회의원에게도 건넸는지 밝혀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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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이 친박 실세였던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특수활동비 1억여원을 제공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해 수사 중이라고 한다. 최 의원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있을 때 특수활동비가 건네졌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특활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사실이라면 파장이 클 것이다. 국정원 특활비가 박근혜 전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와 정부의 핵심 인사들에게 두루 건네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1억여원이 최 의원에게 전달됐다는 진술과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고 한다. 국정원 예산을 책임졌던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이 이런 진술을 했고, 이병기 전 국정원장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당시 정부 예산을 총괄하던 최 의원에게 거액의 특수활동비를 건넸다면, 이는 국정원 예산 증액 등을 노린 뇌물의 성격이 짙다고 봐야 한다. 돈의 성격이나 용처를 따져봐야겠지만, 건넨 쪽이나 받은 쪽이나 뇌물 수수와 국고 손실 등의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돈이 최 의원 한 사람에게만 건네졌겠느냐는 점이다. 국정원이 친박 실세들이나 국회 핵심 의원들에게 정책 협조나 입법 로비 목적으로 특수활동비를 뿌렸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 주변에선 국정원이 여야 의원들에게 평소 거마비 명목으로 100만원 정도의 활동비를 제공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만일 국회의원들이 특활비를 받아 사적으로 쓴 뒤 국정원 예산 배정이나 정책 집행에 협조했다면 매우 심각한 일이다. 행정부를 감시·견제해야 할 입법부 의원들이 임무를 방기하고 오히려 행정부에 ‘매수’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7일 법원의 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구속된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 영장이 기각된 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은 모두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상납한 것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그런 인식이라면 ‘친박 실세’를 비롯한 의원들에게도 용돈 주듯 특활비를 뿌렸을 수 있다. 국가 예산을 용도에 맞지 않게 전용한 것은 중대 범죄다. 여기에 로비 성격까지 가미됐다면 더 큰 범죄가 된다. 관행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 돈은 모두 국민 혈세에서 나왔다. 이번 기회에 국정원의 ‘예산 농단’ 실태를 철저하게 밝혀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논리 vs 논리
수사 형평성 중요 vs 성역 없는 수사를

<단계1> 공통 주제의 의미

서훈 국정원장(가운데)이 지난달 16일 국정원 특별활동비 유용 의혹을 논의하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했다. [박종근 기자]

서훈 국정원장(가운데)이 지난달 16일 국정원 특별활동비 유용 의혹을 논의하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했다. [박종근 기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가 용도에 맞지 않게 전용된 데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특수활동비 중 일부가 정치권으로 흘러간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를 둘러싼 공방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한 중앙과 한겨레의 사설은 전혀 결이 다른 주장으로 분명한 입장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중앙은 그동안 현 정권이 전방위적으로 벌이고 있는 적폐 수사 자체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사도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동안 이와 관련한 수사 대상의 여야 의원 분포를 볼 때 현저하게 야당 의원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한겨레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가 박근혜 전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와 정부의 핵심 인사들에게 두루 건네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논지를 펼친다. 이 돈이 최경환 의원 한 사람에게만 건네졌겠느냐면서 국정원이 친박 실세들이나 국회 핵심 의원들에게 정책 협조나 입법 로비 목적으로 특수활동비를 뿌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와 관련해 중앙은 공정한 수사를 통한 형평성을 강조하고 있고, 한겨레는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한 엄정성에 보다 무게를 둔 확연한 입장차를 나타내고 있다.

<단계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중앙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전용 관련 수사를 현 정부의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의 ‘적폐청산’ 작업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댓글’ 사건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유사 행각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이어 여야 정치권으로도 흘러간 사실이 불거졌다는 점을 논지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특히 그동안 ‘댓글 사건 수사의 최종 타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란 점을 전제로 ‘수사의 초점도 이 전 대통령이 댓글 사건을 보고받고 지시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다 효성그룹 경영진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배경도 겉으로는 총수 일가의 내부 고발에 따른 수사라고 하지만 오래 묵혀온 이 전 대통령 사돈 기업 사건을 이 시기에 꺼내 든 것 자체가 ‘표적 수사라는 합리적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한겨레는 국가정보원이 친박 실세였던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특수활동비 1억여원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라는 검찰의 발표 자체를 중심으로 논지를 펼치고 있다. 최 의원이 혐의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사실이라면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박근혜 전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와 정부의 핵심 인사들에게 두루 건네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정원이 당시 정부 예산을 총괄하던 최 의원에게 거액의 특수활동비를 건넸다면 이는 국정원 예산 증액 등을 노린 뇌물 성격일 가능성이 짙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특수활동비가 최 의원뿐 아니라 친박 실세들이나 국회 핵심 의원들에게 정책 협조나 입법 로비 목적으로 뿌려졌을 가능성이 있고 국회 주변에선 이에 대한 증언도 나온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중앙은 거듭 적폐청산 수사의 형평성을 강조한다. ‘과거 정부의 그림자를 지우는 적폐 수사와 비교할 때 현 정부의 정·관·재계 유력 인사들을 겨냥한 사정 수사는 실적만큼이나 중요한 게 형평성’이라는 것이다. 2004년 대선 자금 수사,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검찰 수뇌부가 고심한 것도 여야의 형평성 문제였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대형 사건 수사가 끝나고 나면 검찰이 으레 ‘정치권의 시녀’라는 말을 들으며 국민 불신이 가중돼 왔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겨레는 만일 국회의원들이 특수활동비를 받아 사적으로 쓴 뒤 국정원 예산 배정이나 정책 집행에 협조했다면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걱정한다. 국가 예산을 용도에 맞지 않게 전용한 것은 중대 범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로비 성격까지 가미됐다면 그야말로 더 큰 범죄라는 것이다. 따라서 관행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고 이 돈이 모두 국민 혈세에서 나왔다는 점을 들어 이번 기회에 ‘예산 농단’ 실태를 철저하게 밝혀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