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하찮은 삶이 품은 티끌 같은 존엄 … 어쩌면 그게 우리를 구원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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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책으로 읽는 연극 -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
권여선 외 지음
문예중앙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그해, 여고생 김해언이 살해된다.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죽음은 남겨진 가족의 삶을 통째로 삼켜버린다. 사건의 파장은 이후 김해언의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의 삶을 속절없이 뒤흔들고 의미 없는 잉여로 만들어버린다. 특히 죽은 언니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동생 김다언에게 그 사건은 결코 멈추지 않는, 끝없이 계속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권여선의 중편소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2016·『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에 수록)’는 이 끝나지 않는 상실의 고통을 포착한다. 작가는 이렇게 적는다. “끔찍한 무엇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 무엇이 끝없이 진행된다는 것,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연극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의 공연 장면. [사진 서울문화재단]

연극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의 공연 장면. [사진 서울문화재단]

삶 속에서 계속되는 끔찍한 고통의 무게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 상상이 불가능함을 탄식하는 저 고백은, 역설적이게도 그럼에도 문학은 그 불가능을 무릅써야 하리라는 조용한 다짐의 목소리로 읽힌다. 그리고 작가는 이 소설에서, 그렇게 한다. 고통은 도처에 있다. 김다언이 범인으로 의심한 한만우의 삶이 또한 그렇다. 그는 무릎 암이 온몸에 퍼져 스물여덟의 나이로 고단한 생을 마쳤다. 김다언은 자신의 잃어버린 삶을 한만우의 이유 없이 가혹한 고통의 옆에 나란히 겹쳐놓는다. 그녀의 애도는 그렇게 타인의 고통을 경유해 가까스로 완성된다.

우리를 고통 속에 내던진 신은 정작 자기가 한 일을 알지 못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이 가혹한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작가는 묻는다.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이것이 신의 잔인한 무지(無知)에 되돌려주는 작가의 대답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존재하고 지속되는 삶의 하찮음이, 그것이 그 자체로 품고 있는 티끌 같은 존엄이, 어쩌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남산예술센터는 박해성의 각색과 연출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11월 23일~12월 3일). 사건의 끝나지 않는 파장을 각자의 시간 속에서 겪어내는 다섯 등장인물의 말과 시선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고 엇갈리고 포개진다. 원작의 서사와 감정의 굴곡을 물리적 공간 속에 오롯이 입체화하려는 시도다. 반면 원작이 갖는 겹겹의 의미가 분산되고 평면화됐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이 소설의 무대화가 그만큼 쉽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겠다.

김영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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