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새 차원의 정치풍토|이상우<서강대 교수·정치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정치열풍 속에서 지샌 작년 한해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은 이제 우리도 지겨운 정치 싸움을 졸업하고 새로운 정치풍토를 만들어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건국 40년 동안의 시행 착오 속에서 때늦게나마 이 정도의 뼈저린 깨달음을 얻어 낼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의 우리정치는 한마디로 집단 이기주의의 표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력이라는 이권을 놓고 편싸움을 펴는 것을 정치라고 생각해 왔다. 국가와 민족, 혹은 민중을 위한다는 화려한 명분을 내세우고 투쟁들을 해 왔었지만 내세웠던 목적에 충실했던 정치인들은 별로 없었다.
모든 정당들이 민주주의 실현을 최고의 정강으로 내세웠으면서도 40년간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 본적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정강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입치레 였었는 가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어느 정당에도 참여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나라 정당은 이념과 정치노선과는 무관한 「함께 정권을 추구하는 인간집단」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2월의 대통령선거는 타성적으로 흘러왔던 우리 나라 정치풍토의 타락상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이라 해도 된다. 나라의 앞날이나 정치 이념 등은 뒤로 접어두고 지역 연고나 지역적 연고를 따져 투표를 행했다는 것은 개표결과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년 선거에서는 그런 뜻에서 우리모두가 참패했다고 해야할 것이다. 여당도, 야당도,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도 모두 패배했다.
건국40년이 되는 새해에 새 공화국이 들어서는 시점을 계기로 무엇보다 먼저 지금까지의 정치풍토부터 일신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풍토를 일구어야만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민주정치, 성숙된 민주정치를 시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새바람을 일으키려 해도 지금까지의 정치풍토가 지속되는 한 그런 바람은 일수 없다.
흙탕물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떤 물고기를 넣어도 멋진 어항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우선 세 가지 점에서 풍토개선을 해나가야 한다.
첫 째로 바른 정당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뚜렷한 이념과 정치적 비전을 가진, 민주적으로 조직되고 운영되는 정당부터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존정당을 개편 하든가, 새 당을 만들 든가 하여 정당들을 바로 잡지 않으면 바른 정치풍토를 기대해 볼 수 없다. 한 두 사람의 정치인이 자기추종자를 주워 모은 파당들이 정당노릇을 하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은 모두 정당 체제 내에 흡수 되어야한다. 「재야」라 부르는 정치세력이 정치일선에 나서는 풍토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더구나 책임 질 수 없는 학생단체들이 정치에 나서는 사태는 더 이상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일반국민도, 학생도 국민인 이상 당연히 정치에 참여 할 수 있게 해야한다. 다만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당에 가입해 정치를 하도록 해야한다. 종교인도, 그리고 기타 직업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둘째로 정치투쟁방식을 「문명화해야 한다. 정치란 다양한 요구와 주장을 조화시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말한다. 이러한 합의는 분명한 논리로 설득 할 때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폭력에 의한 강요로 얻어내는 동의로 어떻게 「합의」를 얻어내겠는가. 여당의 강압·탄압도 반민주적이지만 야당의 「극한투쟁」도 결코 문명 된 정치방식이라 할 수 없다. 가두데모·단식투쟁·몸싸움 등의 정치투쟁방식을 지속하는 한 성숙된 민주주의는 가져 볼 수 없다.
국민들도 이제는 이러한 정치투쟁에는 염증을 느낀다는 것을 정치인도 바로 깨달아주었으면 한다.
이와 관련해 여당과 야당관계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가 서로의 적 일수 없다. 모두가 같은 나라, 같은 국민을 위한 정당들이다. 다만 서로 다른 주장을 펴는 정치 세력 일뿐이다. 야당은 여당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존재다.
따라서 여당·야당은 똑같은 지위에 있는 정당들이다. 뜻을 같이하는 부분은 서로 협조하고 뜻을 달리하는 부분은 서로 쟁점을 분명히 해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서로 상대방을 적대시해야 「선명성」을 인정받는다고 착각해 사사건건 서로 엇나간다면 타협의 정치인 민주정치는 설자리를 잃게 된다.
세 째로 정치인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이 민주투쟁을 벌인다고 나서기 때문에 우리의 민주발전은 제자리걸음을 해왔었다. 풍토란 사람이 만든다. 나라 일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자질과 민주적 타협에 익숙한 체질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일선에 나서주어야 정치 풍토가 개선 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국민들은 선거라는 시험을 통 해 유 자격 정치인만이 정치에 참여 할 수 있도록 엄선해주어야 한다.
무자격 정치인을 도태시키는 1차적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그리고 그 도태방법은 선거다. 민주 정치의 핵심을 이루는 정치인들이라 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바로 눈앞에 닥쳐왔다. 이 선거야말로 우리 국민들이 합심하여 우리의 정치풍토를 일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선거는 경마가 아니다. 누가 이익보고 손해보는 게임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살길이 걸려있는 행사다. 이번 선거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이 기필코 승리, 우리정치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정치를 어지럽히는 정치인을 도태시켜 바른 정치 풍토 개선에의 첫걸음을 디뎌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지도자 한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질 일은 아니지만 새 대통령의 시대 중 에 그 기틀이 잡아지기를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