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국제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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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영화사들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정부는 작년7월1일부터 발효된 새 영화법에 따라 그동안 미국이 시장개방을 요구해온 영화배급과 제작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제한조치를 해제함으로써 외국영화업자들은 국내에 현지법인을 설립, 외화를 직접 수입하여 배급하거나 제작을 할 수 있게됐다.
이에 따라 미국의 2O세기폭스사와 UIP사가 19일 재무부에 외국인 투자인가를 받았는데, 곧 문공부에 영화사 등록을 마치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영화사들이 한국에 진출함으로써 당장 우리 영화시장에 파급될 가시적 변화는 우선 외화물량의 급격한 증가로 예상된다.
안그래도 외화수입이 자유화되자 작년 한햇동안 들여온 외화는 무려 90편이 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외화편수는 고작 60편 남짓밖에 안된다. 수입영화의 3분의1이 창고에서 잠잔다. 또 작년 한햇동안 외화를 들여오는데 쓰인 달러만도 1천5백만달러가 넘었다. 재작년의 7백만달러에 비해 2배를 넘어섰다.
이같은 외화홍수와 대조적으로 한국영화는 작품이 모자라 스크린 쿼터를 채우기 위해 극장쪽이 애를 먹었다. 영화사들이 국산영화제작은 외면한채 외화수입에만 열을 올린 결과다.
또 하나 예상되는 문제는 섹스와 폭력을 수반한 저질 오락영화가 대거 들어올 것이라는 점이다. 얼마전 미국의 국제 반폭력물대책위원회(ICAVE)는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이 돈벌이에 급급, 무자비한 살육과 무책임한 복수극을 마구 제작, 관객의 의식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그 대책을 촉구했다.
이 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영화의 58%가 폭력물이며, 이 영화들은 1시간당 평균 31개의 폭력장면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영화사들이 그 막강한 자본으로 한국영화시장을 점령하기에는 적잖은 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스크린 쿼터제가 그대로 있고 외화수입심의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으며, 상영필름수도 10벌로 제한돼 있고 또 부동산투자의 길이 막혀 있다.
따라서 자의든 타의든 눈앞의 현실로 나타난 미국영화사의 진출을 무턱대고 겁낼 필요는 없다. 받을 것은 받고 줄것은 주어 침체한 한국영화계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그 예로. 일본영화계는 전후 외국영화수입을 개방하고 50년대에 들어와 스크린 쿼터제마저 해제함으로써 오히려 국제경쟁력을 살려 일본영화의 부흥을 가져왔다.
문제는 우리 영화인들이 얼마나 좋은 영화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면 우선 국내에서도 흥행이 되고 세계시장 진출의 길도 열린다.
작년에 『씨받이』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좋은 영화를 열심히 만든 보상이다.
그뿐아니라 수입도 대미편중을 지양하고 다변화해야 함은 물론 수입업자들의 과당경쟁도 차제에 없애야 한다. 우리영화의 살길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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