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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머머.....산수화 가까이보니 깨알같은 펜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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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승호 , 무지개(부분), 금박, 종이에 먹, 226×143㎝. [사진 박여숙화랑]

유승호 , 무지개(부분), 금박, 종이에 먹, 226×143㎝. [사진 박여숙화랑]

멀리서 보면 먹의 농담을 이용해 전통적인 산수화의 풍경을 그린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웬걸, 작은 손글씨다. 펜으로 쓴 깨알 같은 한글이 모여 산수화의 형상을 이룬 것이다. ‘문자 산수’로 불리는 이런 기법의 작품은 유승호(43) 작가의 전매특허와도 같다.

고정관념 깨트린 산수화 전시 셋 #유승호, 펜으로 그린 문자 산수화 #최영걸, 수묵화를 만난 서양풍경 #정주영, 익숙한 듯 낯선 산 그림

반대의 경우도 있다. 멀리서 보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나 이국적인 풍경을 정교하고 사실적인 필치로 그린 펜화 같다. 아니, 정교한 디테일이 때로는 사진을 찍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은 모두 먹과 붓으로 그린 최영걸(49) 작가의 작품이다.

전통에 얽매이는 대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산수화를 맛깔나게 변용한 이들의 전시가 서울의 각기 다른 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산수화의 고정관념을 깨는 접근과 더불어 저마다의 새로운 시도가 드러난다.

먼저 시작한 유승호 개인전 ‘머리부터 발끝까지’(11월 30일까지)는 화랑 두 곳에서 다른 방점으로 나란히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압구정로 박여숙화랑이 작가의 꾸준한 작업인 문자 산수 중심이라면, 회나무로에 새롭게 문을 연 P21에서는 문자의 시각적 효과를 한층 새롭게 펼친 작품을 선보인다. P21은 박여숙 대표의 딸 최수연씨가 대표를 맡아 올해 9월 개관한 곳. 화랑가가 아닌 일반 상가 건물에 작은 공간 두 곳을 세내 마련한 전시장은 작은 규모에 젊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최영걸 ‘바르셀로나의 찬송’ , 아티스티코지에수묵담채, 74.5×54㎝. [사진 이화익갤러리]

최영걸 ‘바르셀로나의 찬송’ , 아티스티코지에수묵담채, 74.5×54㎝. [사진 이화익갤러리]

이곳에 전시 중인 유승호 작가의 작품 역시 한층 재기발랄하다. 상형문자가 아닌데도 한글·영문·한자를 넘나들며 문자에 담긴 의미를 글씨의 형태에 구현하고, 제목과 글씨의 의미를 마음껏 교차한다. 예컨대 작품 제목은 ‘뇌출혈’, 화폭에 그려진 것은 뜻은 전혀 다르되 발음이 비슷한 영어 단어 ‘natural’을 흘려 쓴 형상이다. 풀을 의미하는 ‘艸(초)’같은 한자를 흘려 쓴 작품에는 한글 제목 ‘초’, 영문 제목은 ‘풀’과 발음이 닮은 ‘fool’이 붙었다. 좋아하는 화가로 여러 명필들을 꼽는 작가는 특히 흘림체에 대해 “초서는 너무나 매력적”이라며 “글씨 같기도 하지만 이미지”라고 말했다.

율곡로 이화익갤러리의 최영걸 개인전 ‘성실한 순례’(12월 7일까지)는 한국적 풍경을 그려온 작가가 해외 곳곳을 여행하며 포착한 새로운 풍경이 중심이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전통 산수·화조를 현대인이 어떻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까 고민했다”며 “산수는 곧 풍경”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화선지와 전통 안료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수채화 용지나 채색 물감, 캔버스까지 다양하게 활용했다. 반면 먹에 대해서는 작가의 믿음이 뚜렷하다. “인류가 발명한 안료 가운데 가장 완벽하다”며 “검은 물감과는 다른 색”이라고 말했다.

정주영, 북한산 No.33, 린넨에 유채, 200×210㎝. [사진 갤러리현대]

정주영, 북한산 No.33, 린넨에 유채, 200×210㎝. [사진 갤러리현대]

특히 세필로 그린 수묵화의 흑백 톤에 부분적으로 채색을 입히는 기법은 때로는 눈부시게 화려하고 때로는 은근한 맛이 난다. ‘바르셀로나의 찬송’처럼 인물 하나만 색을 입히거나 ‘화양연화’처럼 산수유나무에 점점이 피어난 노란 꽃과 작은 강아지에 색을 입히는 등 작품마다 적절한 활용이 돋보인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정주영(48) 작가의 개인전 ‘풍경의 얼굴’(12월 24일까지)도 눈길을 끈다.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을 참조해 풍경을 탐구하며 산 그림을 그려온 작가가 이번에는 북한산 연작을 선보인다. 분명 낯익은 산의 바위를 그린 것인데도 보는 사람에 따라 기기묘묘 별별 형상이 떠오르는 낯선 시각적 경험을 안겨준다. 유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인데 굳이 서양화인지 동양화인지 의식하지 않게 되는 것도 희한하다. 멀리 보느냐 가까이 보느냐에 따라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이는 효과는 ‘무제’ 연작에서도 뚜렷하다. 가는 선으로 이뤄진 추상화 같지만 거친 붓으로 작가의 손을 클로즈업해 그린 그림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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