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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다시 보이는 것들 '빛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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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빛나는'

원제 光 | 감독·각본 가와세 나오미 | 출연 나가세 마사토시, 미사키 아야메, 후지 타츠야, 칸노 미스즈,코이치 만타로, 시라카와 카즈코, 키키 키린 | 촬영 도도 아라타 | 조명 오타 야스히로 | 편집 바즈 티나 | 음악 이브라힘 말루프 | 장르 드라마, 멜로 | 상영 시간 101분 | 등급 12세 관람가

[매거진M] '빛나는' 리뷰

★★★

[매거진M] 그는 심장을 잃었다. 시력을 잃어 가는 사진작가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작가는 시간을 잡아두는 사냥꾼”이건만, 이제 시간을 붙잡을 무기가 그에겐 없다. 미사코는 길을 잃었다. 배리어프리영화(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나 음성 해설이 포함된 영화)의 음성 해설을 만드는 미사코는 “영화라는 거대한 세계를 말로써 작게 만드는 것”이 두려워 노심초사한다. 두 사람은 한 배리어프리영화의 모니터링 모임에서 서로를 만난다. 삶을 비관하는 나카모리와 막연히 희망을 바라는 미사코는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점차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된다.

'빛나는'

'빛나는'

‘빛나는’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크게 의미 없는 영화다. 병든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시련을 딛고 일어선다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단순한 통속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갈등과 시련, 치유와 사랑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나카모리의 상실을 지켜보며, 해설을 완성해 나가는 미사코의 여정 속에서 ‘빛나는’은 감각적이며, 찬란하다. 빛이 소멸할 때, 이미지를 잃을 때, 언어로만 존재할 때, 음성으로 울릴 때, 멀찍이 또 가까이 대상을 응시할 때…, 이 미세한 순간들 속에서 ‘빛나는’은 실로 영화적인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간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말한다. “영화는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느끼는 매체”라고. 석양을 함께 맞이하는 나카모리와 미사코를 응시하는 대목은 ‘빛나는’의 전체를 함축한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석양을 뒤쫓는 게 너무 좋아서…, 태양이 잠길 때까지 열심히 쫓아갔어요.” 미사코의 대사는 나카모리가 차마 뱉지 못한 속내이며, 영화를 향한 가와세 감독의 애정 어린 고백처럼 들린다.

'빛나는'

'빛나는'

영화의 정서와 별개로, 배리어프리영화 제작 과정을 엿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음성 해설이 단순히 배경과 몸짓을 말로 옮기는 수준에 그치는 줄 알았다면 더더욱 그럴 터. 섬세한 묘사와 침묵의 미묘한 뉘앙스 사이에서 한 편의 영화가 재탄생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 진다. 한 번은 온전히, 한 번은 눈을 감고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다.

TIP 올해 제70회 칸영화제에서 인간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에 주어지는 에큐메니컬상을 받았다.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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