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우리 가족만으로 그쳤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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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21당시 서울 세검동 파출소 앞에서 북괴공비의 총격에 순직한 최규직 경무관(당시 종로경찰서장)의 미망인 유정화 여사(55)는 악몽의 그 날을 다시 맞아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당시 한 살 이었던 막내딸이 어느덧 어엿한 여대생이 됐으니 지하에 계신 아빠에게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지나간 인고의 세월을 회상하며 목소리가 젖어드는 유씨는 세월이 흘러도「1·21 사태와 돌아가신 남편의 죽음이 민족사의 교훈으로 남게 되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지난 20년 간 1남3녀를 기르며 아이들 앞에선 절대로 눈물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최근의 KAL기 피격사건 때는 TV 앞에서 함께 울고 말았다.
『북괴의 소행임을 직감할 수 있었지요. 정상적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니까. 비극은 우리가족으로 그쳤으면 했는데 아웅산 사건에 이어 KAL기 사건 등 끊임없는 비극 앞에 정말 가슴이 저려옵니다』
유 여사는 자녀들이 음악을 듣다가도 목소리조차 기억 못하는 아빠생각에 쓸쓸해할 때와 어려움이 생겨도 상의할 상대가 없음을 느낄 때가 괴로운 순간들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빠의 명예와 신앙(카톨릭)이 이들 가족에게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해주었다. 또 84년 작고한 할머니 정경덕 여사가 지병 속에서도 가족들의 기둥역할을 해 힘이 됐다. 최 경무관은 2대 독자였다.
유 여사는 아직 출가하지 않은 숙용양(27·음대 졸), 민석군(26·회사원), 희용(24·미대졸), 설전(21·음대3년)양과 함께 아빠생시부터 살았던 서울 용문동에 그대로 살고 있다.
아빠의 내음 곁을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생시에 음악·그림·문학에 심취했던 아빠를 닮아 아이들도 예능계통을 택했다. 학업을 계속하고 싶어했던 아빠의 책과 국제정치학 석사학위 증을 유품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약사인 유 여사는 최 경무관 사후 공무원 연금관리공단 후생관 등에서 15년여간 약국을 경영했으나 복잡한 사정으로 86년3월 그만둔 상태. 유 여사는『김신조씨를 여러 차례 만났으며 그가 신앙 인으로 다시 탄생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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