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논에 ‘자갈과 모래’, 포항 액상화 현장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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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보세요, 자갈하고 모래가 있네요.”

경북 포항시에서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진앙에 있는 논. 송우영 기자

경북 포항시에서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진앙에 있는 논. 송우영 기자

기상청 연구관이 말했다. 지난 18일 ‘포항 지진’의 진앙인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북위 36.12도, 동경 129.36도) 지점. 연구관의 진지한 표정은 논에서 발견된 자갈과 모래가 이번 지진과 관련된 현상임을 말하고 있었다.

현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논이 펼쳐져 있었다. 바짝 마른 논 바닥은 추수를 위해 콤바인 기계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 굳어 있었다. 논 바닥의 흙이 드문드문 갈라져 있었지만, 전국을 공포에 빠트린 규모 5.4 지진이 시작된 곳이라기에는 평온했다.

박순천 기상청 지진화산연구관 연구관이 18일 논에 있는 모래와 자갈을 살펴보고 있다. 송우영 기자

박순천 기상청 지진화산연구관 연구관이 18일 논에 있는 모래와 자갈을 살펴보고 있다. 송우영 기자

하지만 진앙 근처를 둘러보던 기상청 연구관은 지진으로 인한 ‘액상화 현상’의 단서를 찾아냈다. 해수욕장에나 있을 법한 가는 모래와 굵은 자갈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액상화는 지진으로 지반이 순간적으로 액체 상태처럼 변하는 것을 말한다. 모래와 자갈이 쌓인 곳 주변은 방금 호스로 물을 뿌린 듯 흥건하게 물이 고인 곳도 있었다.

바짝 마른 주변의 다른 논 바닥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박순천 기상청 지진화산 연구과 연구관은 “지진으로 표면 아래에 있던 모래ㆍ자갈ㆍ지하수 등이 올라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포항 지진'의 진앙 근처 논에서 발견된 자갈들. 송우영 기자

'포항 지진'의 진앙 근처 논에서 발견된 자갈들. 송우영 기자

'포항 지진'의 진앙 근처 논에서 발견된 가는 모래. 송우영 기자

'포항 지진'의 진앙 근처 논에서 발견된 가는 모래. 송우영 기자

'포항 지진'의 진앙 근처 논이 물에 차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포항 지진'의 진앙 근처 논이 물에 차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전문가들은 ‘액상화’ 현상이 해안가의 지진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김소구 한국지진연구소장은 “땅 속에는 항상 물이 있다. 지진으로 지반과 물이 따로따로 분리되면서 생기는 현상이 액상화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고베 등 해안가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항상 생기는 현상이다. 특별한 건 아니다. 포항이 해안가에 있고 약한 퇴적암 지역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반이 약해지는 요인인만큼 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기상청과 함께 진앙 근처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현장조사팀은 모래 분출구(샌드 볼케이노)와 진흙 분출구(머드 볼케이노)를 30여 개 찾아냈다고 18일 밝혔다. 대부분 진앙 근처다.

기상청과 지질연은 19일부터 액상화 현상에 대한 집중 조사에 들어갔다. 기상청 관계자는 “어떤 조건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난 액상화인지 정밀 조사를 하려고 한다. 어떤 곳을 파면 좋을지 살펴보고 조만간 그곳을 시추해 조사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포항=송우영·최규진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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