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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TV… 복지부,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 제시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방영된 지상파 드라마에서 군인 신분의 주인공과 친구들이 '무박 3일' 술자리를 갖는 모습. [사진 보건복지부]

지난해 방영된 지상파 드라마에서 군인 신분의 주인공과 친구들이 '무박 3일' 술자리를 갖는 모습. [사진 보건복지부]

 휴가를 받은 장교 두 사람이 술집에 자리를 잡고 소주를 시킨다. 술을 유리잔에 가득 따르고 건배를 하며 “무박 3일”을 외친다. 잠을 자지 않고 3일 내내 술을 마시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인기를 끈 지상파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이들은 3일 폭음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복지부,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 공개 #"술 권하는 사회, 미디어 영향력 크다" #올해 드라마 회당 음주 장면 1.3회 등장 #예능에선 거의 매 회 음주 언급 #3번 중 1번은 원샷·병샷 등 '문제적 음주' #"음주 장면 최소화하고 긍정 묘사 삼가야"

올해 방영된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생일 모임에 친구들을 초대한 출연자가 소주로 분수를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올해 방영된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생일 모임에 친구들을 초대한 출연자가 소주로 분수를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올해 다른 방송사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출연자가 소주로 분수를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소주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하며 친구들과 분수에서 소주를 따라 마시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그려졌다.

이처럼 음주 문화를 미화하고 조장할 수 있는 장면들이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파를 타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15일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지난 9월 미디어 제작자, 방송심의기관, 시민단체, 학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했다.

협의체는 “한국에서 매년 10만여 명이 음주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하는데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의 20배”라며 “술을 권하고 폭음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굳어진 데에는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술을 마시며 진행하는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우정주'라는 이름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권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술을 마시며 진행하는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우정주'라는 이름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권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복지부와 대한보건협회가 실시한 2016년 TV 음주 장면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케이블·종편을 포함해 드라마 1회당 술 마시는 장면이 평균 1.1회 등장했다. 지상파를 제외한 케이블·종편만 보면 1.8회로 빈도가 더 높았다.

예능 프로그램은 회당 0.2회로 음주 장면 직접 등장은 드라마보다 적었지만 ‘혼술’ ‘우정주’ 등 음주를 미화할 수 있는 대사가 회당 0.98회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상반기에는 드라마에서 회당 1.3회, 예능에서 회당 0.3회의 음주 장면이 등장해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2017년 상반기 미디어 음주 장면에 등장한 문제성 음주 표현.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2017년 상반기 미디어 음주 장면에 등장한 문제성 음주 표현.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더 큰 문제는 TV 속 음주 장면이 대부분 과음·폭음 등 문제성 음주를 그린다는 점이다. 술을 병째 들고 마시거나 폭탄주를 만들고 원샷을 하는 등의 음주 행태가 문제성 음주에 해당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2017년 상반기 모니터링 결과 전체 음주 장면 중 문제성 음주의 비율이 32.4%에 달했다. 드라마는 30.6%, 예능은 37.4%였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모습. [사진 보건복지부]

지상파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모습. [사진 보건복지부]

2015년 방영된 지상파 드라마에서 고등학생인 주인공과 친구들이 노래방을 찾은 장면에 술병이 등장해 미성년자 음주를 암시했다. 해당 장면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를 받았다. [사진 보건복지부]

2015년 방영된 지상파 드라마에서 고등학생인 주인공과 친구들이 노래방을 찾은 장면에 술병이 등장해 미성년자 음주를 암시했다. 해당 장면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를 받았다. [사진 보건복지부]

협의체는 가이드라인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음주로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음주 장면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의 10가지 항목은 다음과 같다.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

1. 음주 장면을 최소화하고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 아니라면 넣지 않는다.
2. 음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피한다.
3. 음주와 연관된 불법 행동이나 공공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4. 음주와 연계된 폭력·자살 등의 위험행동 묘사를 삼간다.
5. 청소년 음주를 묘사해서는 안 되며, 어른들의 음주 장면에 청소년이 함께 있는 장면도 매우 신중하게 묘사한다.
6. 연예인 등 유명인의 음주 장면은 그 영향력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묘사한다.
7. 폭음·만취 등 해로운 음주 행동 묘사를 삼간다.
8. 음주 장면이 주류 제품을 광고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9. 음주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는 장면은 피한다.
10. 잘못된 음주 문화를 일반적인 상황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복지부는 16일 오후 2시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2017년 음주폐해 예방의 달’ 기념식을 열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이날 행사에서 절주 사업에 기여한 10개 단체와 유공자 13명에 장관 표창도 수여할 예정이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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