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선행조건 여전한 "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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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선대가 1백 13일만에 불러들인 경찰에 의한 학사행정 마비사태 해결은 지난 85년 서울대생들의 시험거부 때에 이어 3년만에 처음일 뿐 아니라 전교생의 유급 위기상황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경찰의 농성학생 강제해산은 지난 4일부터 실시하려던 보충수업마저 거부당하자 학교측의 「일부 학생에 의한 전교생의 유급 위기 타개」를 위한 요청에 따른것.
조선대는 당장 학사행정을 정상화시켜 오는 2월말까지 토·일요일도 없이 보충수업을 실시해야 전교생의 유급을 막을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지난해 9월 18일 제적생 30여명이 박철웅 총장의 면담을 요구하며 총장실에 들어갔으나 면담이 이뤄지지 않자 「박 총장 퇴진」과 「도민대학 환원」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들어감으로써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철야농성이 장기화되면서 학부모 및 교수들도 이에 동조, 김기택 교수(38·서반어학과)등 22명이 양심선언을 발표했고·학부모 협의회 및 민주동문회 등이 속속 구성됐다.
학교측은 사대의 장기화에 따라 지난해 11월초부터 농성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해결책을 모색했으나 진전을 보지 못하자 경찰력의 개입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기도 했다.
한편 11월 23일에는 학생과 학부모 2백여명이 집단 상경, 문교부와 민정당을 방문해 관권의 개입을 요청, 결국 문교부가 12월 15일까지 종합감사를 실시하여 12월 30일 ▲박철웅 총장 해임 ▲이사진 대폭 개편 ▲보직교수 전원 교체 ▲수업환경 개선 등 시정조치를 내렸었다.
이에 따라 학교측은 박 총장을 퇴진시키는 한편 ▲이사진은 학식과 덕망이 있는 지역사회 인사로 개편하며 ▲후임총장은 새로 구성되는 이사회에서 선출하고 ▲보직교수는 정상화 후 전원 교체하고 ▲수업환경도 점차 개선하는 등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약속, 1월 4일부터 실시하는 보충수업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생·교수·학부모·동문으로 구성된 대학 자치 관리운영위원회에서의 이사진 선출 ▲보직교수 전원 퇴직 ▲해직교수 전원 복직 등 3개 선행조건이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정상화조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 지난 4일부터 시작된 보충수업을 거부·방해해 왔다.
보충수업까지 거부당하자 학교측은 6일 김택주 재단이사장 명의로 담화문을 발표, 『40년 전 훔쳐간 대학을 내놓아라』는 요구를 제외한 학생들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히고 학부모·동문들이 농성학생들을 설득하여 전교생 유급의 파국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농성학생과 학부모·교수·동문들은 7일 반박성명을 통해 학원 정상화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에 대한 학교측의 적극적이고 성의있는 자세와 문교부의 근본적인 방향제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선대 사태는 경찰력의 개입으로 겉으로는 수습의 실마리가 잡혔으나 앞으로 강제진압에 따른 후유증을 해소하고 정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학교·교수·학생·학부모의 끈질긴 대화가 절실하게됐다.

<광주=임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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