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익명으로 선생님 평가란에 남긴 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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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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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한 ‘교원 능력 개발평가’가 진행 중이다. 이는 학부모·학생이 교장 등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만족도 조사’와 교원 간 상호 평가하는 ‘동료 교사 평가’로 나뉘어 매년 시행된다.

“예쁜 척 하지 마” “가슴이 크다” #인격 모독 넘어 음담패설까지

‘만족도 조사’ 중 익명이라는 점을 악용해 교원 평가에 음담패설을 적는 학생이나 교사에 대해 잘 몰라 무조건 최고점을 주는 학부모가 있어 본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생만족도 조사지’ 중 ‘선생님께 바라는 점’을 읽다가 “성형 티 남, 예쁜 척 그만”이라는 글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고 조선일보는 13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대전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교원평가에서 “다리가 굵으니 치마를 안 입으셨으면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올바른 교육을 하는지 등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외모를 비하하는 인격 모독적인 말들이다.

이 밖에도 ‘가슴이 크다. 하고 싶다’는 음담패설부터 ‘그냥 싫다. 죽었으면 좋겠다’ ‘이제 너무 늙으셨다’ 등 악플과 다를 바 없는 교원평가를 적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학부모 입장에서는 얼굴과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교장·교감 선생님에 대해 평가를 해야 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교장 선생님은 학부모 의견을 반영해 학교 운영계획을 수립한다’ ‘교장 선생님은 학년 배정 시 선생님들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다’ 등의 문항들은 내부 사정을 잘 알아야 하는데 학부모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홈페이지에 게재된 ‘교육활동 소개’나 아이들의 말이 전부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노컷뉴스에 “익명 평가라 해도 혹시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모두 최고점을 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 10월 12~16일 전국 교원 1만622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90.4%가 ‘교원평가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교원평가제는 교원의 전문성을 키우고 학생·학부모의 공교육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제도이지만 교원의 불필요한 업무를 가중하고 있고(97.1%) 교사들의 사기만 떨어뜨린다(96.7%)는 게 주된 이유였다. 교사·학생·학부모 간 관계를 왜곡한다(96.2%)고 응답한 교사도 상당수였다.

교육부는 교원평가의 개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폐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가) 결과를 갖고 선생님들의 역량 강화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개선해 나가는 것은 좋겠지만, 수년간 끌어온 제도를 즉각 폐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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