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수다] 고교논술방-학문하는 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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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부산 동서대에서 열린 부산시교육청 중등교사 논술지도자 과정 연수에서 참가 교사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중앙포토]

*** 학생 글 - 이선우 <양정고 2>

[1]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 원동력에 대한 태도는 옛날부터 엄청난 논제거리가 되어왔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학문의 실용적 대입을 주장했던 소피스트들을 비판하며, 학문의 목적은 그 본연에 있다고 했다. 반대로, 현대에 들어와 사회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제는 그러한 관점이 달라지게 되는[→바뀌어야 하는] 시기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학문을 취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일까?

[2] 제시문 (가)(나)(다)는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먼저 (가)는 학문하는 태도를 올바른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관련하여 올바른 지식은 밖에서 찾는 지식이 아니라 안에서 찾는 지식임을 주장하고 있다. (나)는 사물의 '이치'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 제시문에서 소개되는 백로와 까마귀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듯이[→보이듯이] 이 이치가 경험적 지식으로부터 수집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치를 깨닫기 위해 고정관념을 버리고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도 천자문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다)는 학문의 범주가 복잡해지고, 서로의 분야에 대한 반박과 논의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학문의 근본을 논할 때 우열을 정할 수 있다는 관점을 표출하고 있다. 이 우열의 기준은 천하 민생이 실제로 쓰는 바, 천하의 정치가 반드시 근거로 삼는 바이며,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신과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3] 세 개의 제시문을 비교 분석하기 전에, 현대사회에서 학문의 분야가 너무나 다양해지면서, 이 세 관점이 어느 분야에서는 근본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는 응용될 경우가 적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는 철학, 인류학, 국문학, 심리학과 같이 인간의 기본 감성과 심성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기초가 될 수 있는 논의이다.

가령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려는 철학자는 이에 대한 연구에 앞서 끊임 없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자신이 깨달은 바를 행실로써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의 근거를 인간의 내면에서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현대 과학에서는 (가)와 같은 안에서 찾는 지식이 효용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나)와 (다)는 현대 과학에서 필수적인 요소인 경험적 지식과 실용성을 각각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필자는 사물에 대한 이치가 학문에서의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는 반면, (다)는 오직 실용적인 접근이 학문에 대한 태도 중 으뜸으로 치고 있다는 것에서 주제 면에서의 차이를 보인다. 비록 각각의 제시문이 학문에 대하는 태도에 대한 접근이 다르기는 하지만, 세 제시문의 생각 중 어느 하나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4] 세 제시문 중 특히 (나)와 (다)를 참고하여 내가 판단한 학문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실용적 사고와 열린 생각을 갖춘 경험적 사고이다. 학문을 배우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경우만 성립한다. 가령 기초 학문이라는 철학의 경우도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상을 만들어 낼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성리학처럼 양반들에게만 연구되고 백성들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다)의 생각과 같이 열등한 학문이다. 학문은 실생활에서의 활용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며, 이 학문 연구의 과정에서 이치를 깨닫는 과정은 (나)와 같이 반드시 경험적 지식을 통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총평.첨삭

치밀한 분석 … 완급 조절 안 된 게 흠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논술 대표강사

이선우 학생의 글은 제시문을 치밀하게 분석, 요약하면서 그것을 자기식으로 적절히 재구성하려 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문단 [2]는 각 제시문을 잘 정리하고 있는데, 다만 (다)가 자기 언어로 재구성되지 못해 아쉽다.

한편 문단 [3]에서 볼 수 있듯이, 학생은 각 입장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는 이르지 못했다. 가령 최근 논란이 되었던 황우석 박사는 학자로서 (가)의 입장을 충분히 견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실용 학문에서도 (가)의 입장은 중요하다.

글을 써가는 방식에서 너무 조심스러운 대목도 많다. [2] 첫 문장의 '나름대로의'나 [3] 첫 문장의 '세 개의 ~ 전에'와 '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4] 첫 문단의 '세 제시문 ~ 내가 판단한' 같은 부분은 과감히 빼야 좋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여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면 과감하게 주장해야 마땅하다. 반면 [1]에서는 피터 드러커의 입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모호함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학생의 글은 강약과 완급이 조화롭지 못하다. 이해한 내용을 발전시키고 비판하여 확실한 자기 의견을 정하고, 그 과정에서 적절한 예를 들어 논증한다면, 나름의 확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완성도 높은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논술 대표강사

*** 제시문 해설

출전: (가) 정자(程子)의 문집, (나) 박지원(朴趾源)의 문집, (다) 최한기, '기학'

학문을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는 여럿일 수 있다. 세 제시문은 학자에게 필요한 태도의 몇몇 측면을 말한 것이지 상충되는 입장이 아니다. 어느 한 가지 태도만 강조하기보다는 중요한 여러 태도를 조화롭게 가져가는 일이 필요하다. 제시문 각 입장의 장점을 종합하여 자기 의견을 개진해야 좋다.

(가)는 주체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이 점은 '안에서 찾는'다거나 '자득(自得)'이란 표현에서 두드러진다. (나)는 실증 또는 경험을 중시한다. 선비가 깨달아야 할 이치란, 농업, 공업, 상업 등 실제 경험 세계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에서 강조하는 실학(實學)은 허(허황되거나 허망한 것)가 아닌 실(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다룬다. '천하 민생이 실제로 쓰는 바와 천하의 정치가 반드시 근거로 삼는 바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그 배움에서 결코 버리거나 벗어날 수 없는 훌륭한 것이다.

학자는 심지가 굳어야 하고 언제나 자기를 돌이켜보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구체적 지식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나아가 그런 지식을 넓혀가야 한다. 지식은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문은 실제 세계와 무관하지 않게 되고, 자신과 타인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논하면서, 그 각각의 태도를 결여했을 때 학문이 어떻게 변질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지 예를 들면 좋은 글이 되겠다.

*** 다음 주제는

고교생 대상 실전 논술코너를 격주로 운영합니다. 중앙일보 joins.com의 '우리들의 수다'(cafe.joins.com/suda) 고교 논술방에 글을 올려주세요. 매회 20명을 골라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학원 김재인 대표강사가 첨삭지도를 해드립니다. 또 우수 논술 한 편을 골라 총평과 함께 지면에 게재합니다. 논제와 관련된 제시문은 지면 사정상 '우리들의 수다' 고교 논술방에만 올립니다.

▶논제:다음 제시문(cafe.joins.com/suda) 중 (가)는 현대문명이 빚어내는 부정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 현상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시문 (나)에 기초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한 후,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시오. (1600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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