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마다 적폐청산위 … "몇 명 구속돼야 끝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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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라 일컫는 대부분이 현직 공무원들이 관여된 것이다. 공무원사회를 적폐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안팎서 시달리는 공무원들 흉흉 #“어쩌다 기피업무 맡았던 것뿐인데 #동료들을 조사하는 자체가 씁쓸” #교육·고용부, 국세청·공정위 등 TF #진보·친노동계 인사로 구성돼 논란

익명을 요구한 부처의 한 공무원은 새 정부 ‘적폐청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새 정부 들어 대부분의 부처에서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위법·부당 행위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태스크포스(TF)·위원회를 잇따라 출범시키고 있다.

각 부처의 이런 TF·위원회엔 ‘진상조사’(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개혁’(고용노동부·국세청), ‘개선’(보건복지부·공정거래위원회) 같은 단어들이 들어 있다. 이름엔 ‘적폐 청산’이 없지만 지난 정권의 핵심적 사업에 관여한 공무원들을 공직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는 게 세종시 공무원들의 시각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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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교육부 공무원 몇 명이 구속돼야 진상조사가 끝나지 않겠어요.”

지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이 적폐로 지목된 교육부의 한 공무원은 국정교과서 진상조사의 결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상조사 불똥이 결국 국정화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들에게 튈 것이라는 얘기다.

교육부는 지난 9월 공무원 8명을 배정해 교육부 장관 직속의 ‘국정화 진상조사팀’을 만들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교육부 2명에 진보 성향의 외부 인사 13명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도 출범했다. 교육부 안에선 “교육부 공무원이 스스로 동료들을 조사하는 상황이 씁쓸하다. 진상조사 기구가 교육부 바깥에 생겼다면 덜 씁쓸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의 한 간부는 국정 교과서 진상조사에 대해 “국정화는 지난 정권의 핵심 정책이었다. 교육부 안에서 직간접적으로 관련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국정화를 담당한 공무원도 스스로 원해 한 게 아니다. 다들 기피하던 업무를 어쩌다 맡은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앞으로 누가 국정과제를 맡겠느냐.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적폐청산’ 작업이 가속화하면서 정부세종청사의 공무원들은 위축되고 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국정’이란 단어 자체가 꺼내선 안 될 말처럼 여겨지고 있다. 내부 공무원들로 진상조사팀이 꾸려지면서 직원들 사이에 위화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고용부에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고용·노동 분야 교수와 변호사·노무사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위원 대부분은 노동계 입장을 대변하는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용부 산하의 위원회들은 경영계와 노동계의 추천을 고루 받아 선임하는 게 관례였다. 이번엔 이런 관행이 무시됐다. 박화진 고용부 기획조정실장은 “장관이 여기저기 의견을 듣고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주며 “고용·노동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김 장관이 그간의 고용정책 전반을 적폐로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청한 고용부 관계자는 “말이 개혁위원회이지 사실은 적폐청산위원회”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복지부의 ‘조직문화 및 제도개선위원회’, 국세청의 국세행정 개혁 TF가 이른바 적폐청산을 위해 신설됐다. 국세청 TF는 과거 논란이 된 세무조사를 점검하고 정치적 중립성 제고를 위한 세무조사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남윤서·하남현 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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