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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학, 싱싱한 잠재력 품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4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만나 대담을 나눈 고은 시인(왼쪽)과 나이지리아의 198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소잉카는 "고은 시인은 오랜 친구다. 친구 사이의 문제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것"이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광주광역시=프리랜서 오종찬

4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만나 대담을 나눈 고은 시인(왼쪽)과 나이지리아의 198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소잉카는 "고은 시인은 오랜 친구다. 친구 사이의 문제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것"이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광주광역시=프리랜서 오종찬

 이슬람 극단주의, 북핵 위기, 유럽과 미국의 우경화…. 전 지구적 수난의 시대에 문학은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가. 문학의 기여가 과연 가능한가. 소수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비책은 있나. 진부한 주제고, 누가 나서도 뾰족한 해법이 없는 문제들이지만 '거장'들은 역시 달랐다. 풍성하고 깊이 있는 사유의 폭을 보여줬다.

고은 시인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 특별 대담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만나 문학의 현실과 미래 진단 #소잉카 "북핵 위기, 작가들이 비판적 사고 갖고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 #고은 "서구문학이 반드시 보편적인 것 아니다. 한국문학 특수성 살려야"

고은 시인은 "한국문학이 서양 문학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 맹목적인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고은 시인은 "한국문학이 서양 문학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 맹목적인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한국의 고은(84) 시인과 1986년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83) 두 사람 얘기다. 국제 문학행사 등에서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는 두 사람은 4일 광주광역시에서 다시 만났다. 1~4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핵심 행사인 이날 오후 특별대담에서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궐석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월레 소잉카는 "문학은 곙계선을 설정해 상상력을 억압하는 권력의 속임수를 파헤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궐석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월레 소잉카는 "문학은 곙계선을 설정해 상상력을 억압하는 권력의 속임수를 파헤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고은 시인은 특유의 유머로 분위기를 띄웠다. "한국의 깊은 산중 절간에는 으레 청산과 백운이 있기 마련인데 소잉카 선생은 백운 같은 분이다. 구름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인상이다." 소잉카의 숱 많은 흰 머리를 빗댄 발언이었다. "친구들 사이의 문제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것이다." 소잉카 역시 여유 있게 받아쳤다.
 나이지리아 독재정권을 비판하다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소잉카는 대담에 앞서 '해돋이가 당신의 등불을 끄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했다. 문학이, 세상을 구획하고 경계선을 설정하고자 모든 종류의 권력에 강력한 안티테제(반대 주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의 대담은 차츰 논의가 뜨가워지며 예정된 1시간을 넘겨 진행됐다. 프리랜서 오종찬

두 사람의 대담은 차츰 논의가 뜨가워지며 예정된 1시간을 넘겨 진행됐다. 프리랜서 오종찬

 강연 후 대담에서 문학이 어떻게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느냐고 사회자가 묻자 소잉카는 "시인들(문학인들)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술 발달로, 종이책 출간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난 다양한 글쓰기와 작품 발표 방식이 가능해진 만큼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인간 상상력을 억압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권력의 속임수를 문학이 파헤칠 수 있고, 파헤쳐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린 발언이었다.

 "소잉카가 방금 경계선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사람과 생명계에서 경계라는 체제는 언제나 만들어진다. 무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계의 화성이나 금성, 지구도 하나의 경계들이다. 그런 면에서 경계 넘기, 경계 벗어나기는 경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립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땅을 딛고 서 있는 것도 인력에 대한 반작용 아닌가. 인간은 경계를 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연다. 그러다 보면 또 경계가 만들어지고, 다시 경계를 넘는 행위가 이뤄진다. 이런 것이 세계 흐름의 지속성, 생동하는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고은 시인의 이런 발언으로 대담은 뜨거워졌다. 경계를 단순한 억압으로 간주하지 않고, 작용과 반작용, 현실과 초월이라는 대립항의 한 축으로 상대화하면서 논의가 깊어졌다.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은 문학을 통한 아시아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행사다. 프리랜서 오종찬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은 문학을 통한 아시아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행사다. 프리랜서 오종찬

 ▶소잉카=전적으로 동의한다. 경계는 필요하다. 경계가 있어 인간 정신은 도전을 받는다. 학교의 규율이 없다면 아이들의 삶은 무미건조해질 것이다. 문제는 경계가 너무 강화돼 창의력이 말살되는 상황이다. 경계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경계를 뚫고 나가 더 많은 풍요가 형성되도록 도와야 한다.

 경계에 대한 논의는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얘기로 옮아갔다. 한국문학 혹은 나이지리아 문학이라는 특수성은 기존의 세계문학이라는 경계선, 구획을 넘어 보편성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고은 시인은 이번에도 보편성과 특수성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고은=특수성과 보편성 둘 다 맹신해서는 안 된다. 서구 작가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문학이 보편성에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보편성은 말하자면 어린아이다. 자라나서 특수성으로 성장한다. 그런 면에서 보편성은 있어야 하지만 시야가 풍요롭게 열려야 한다. 한국과 이란의 시가 보편성을 획득해, 동일하다면 이런 자리에서 우리가 만날 필요가 없다.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연대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소잉카=동감이다. 보편성은 때로 허구적인 개념일 수 있다. 사람들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몰아치기 위한 조작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창작은 특수성에서 출발할 때, 창작자의 가장 가까운 곳, 진심에서 출발해 언어로 표출될 때 보편성을 얻게 된다. 우리가 가장 의미 있게 느끼는 것은 우리 삶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나흘간의 일정 마지막 날인 4일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 참가한 국내외 시인들은 행사의 성과를 요약한 '2017 광주선언문'을 발표했다. 아시아문학을 인류가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평화에 기여하는 문학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나흘간의 일정 마지막 날인 4일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 참가한 국내외 시인들은 행사의 성과를 요약한 '2017 광주선언문'을 발표했다. 아시아문학을 인류가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평화에 기여하는 문학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조급하게 서양 문학을 따라가려 하지 말고 우리 안의 보물을 바로 보자는 평범한 논의였지만 울림이 있었다. 대담은 1시간 넘게 진행됐다. 고은 시인은 "오늘 이 자리, 국제 시인축제에서 소잉카와 더불어 시를 확신합시다!"라며 시 예찬론을 펼쳐 중국·일본·몽골·이란 등 아시아와 미국·프랑스·스페인 등의 시인 참석자, 일반 청중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두 사람은 서양 문학에 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학이 싱싱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전망을 공유했다.

 북핵 위기 같은 현실의 문제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에 소잉카는 "작가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고은 시인은 "험악한 상황에 처한 한국에서 열리는 문학행사에 참석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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