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탄 현수막 든 한국당 의원에 악수 청한 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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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8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다시 현수막 시위가 등장했다. 지난 6월12일 추경안 협조를 요청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에 이어 두번째다. 자유한국당은 당시 '문재인 정부 각성하라'는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날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한국당 의원들은 검은 정장을 입고 왼쪽 가슴에 ‘근조’라고 쓴 리본을 달고 자리에 앉았다. ‘공영방송은 죽었다’는 주장을 담았다고 한다. 한국당 의원들은 노트북에 ‘민주주의 유린 방송장악 저지’라고 쓰인 A4용지를 붙이고,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대형 현수막을 자리 앞에 내걸었다. 현수막엔 ‘북핵규탄 UN결의안 기권 밝혀라’ ‘북 나포어선 7일간 행적 밝혀라’ ‘공영방송 장악음모 밝혀라’고 쓰여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국회 본회의 상정에 따른 시정연설을 마치고 현수막을 들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 사이를 지나며 김도읍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국회 본회의 상정에 따른 시정연설을 마치고 현수막을 들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 사이를 지나며 김도읍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문 대통령은 취임식 때 입었던 양복을 입었다. 취임식 때와 같이 초심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양복 왼쪽 가슴 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배지를 달았다. 동계올림픽 D-100일을 기념해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다.

한국당의 현수막 시위로 시정연설은 불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38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23차례 박수가 나왔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민주당이 박수를 주도했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은 간간히 박수를 쳤다.

연설 중간 한국당 의원들의 기립시위도 있었다. 문 대통령 연설이 종반부를 향해가던 10시 31분 한국당 의원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원들은 대통령을 마주 보고 탁상 앞에 걸어뒀던 대형 플래카드를 잘 보이도록 높이 들어 올렸다. 문 대통령이 국가유공자의 생활비 인상, 일반병사 봉급 인상 등을 역설하고 있던 때다.

순간 본회의장엔 긴장이 흘렀지만 문 대통령은 표정 변화 없이 한국당을 바라보며 연설을 이어갔다.

무거운 분위기는 문 대통령이 연설을 끝낸 뒤 반전됐다. 문 대통령은 예상 밖의 행보를 보였다. 국무위원들과 인사한 뒤 한국당 의원들 쪽으로 퇴장하며 악수를 청했다. 이를 보고 있던 민주당 의원들이 환호했고, 한국당 의원들은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대통령은 항의 현수막을 들고 있던 의원들은 물론이고, 서청원, 이철우, 정갑윤, 원유철 등 한국당 중진 의원들과도 웃으며 악수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박주선 부의장, 박지원 의원,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김무성 의원, 정의당 노회찬 의원, 심상정 의원, 이정미 대표, 무소속 이정현 의원 등과 일일이 악수했다. 대선 후보였던 유승민 심상정 의원과는 더 밝게 인사했고, 김무성, 주호영 원내대표와 인사할 때는 팔꿈치를 토닥이기도 했다.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돌자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여기도 와주세요”라고 외쳤고, 이재정 의원이 “화이팅입니다”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과 인사를 마친 뒤 10시41분 본회의장을 떠났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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