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닥친다" 심령술사 말 철석같이 믿은 키르기스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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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1500년 된 미라가 저주에 대한 공포로 원래의 자리에 다시 묻히는 소동이 벌어졌다.

10월 31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키르기스 국가위원회는 고고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립박물관에 보관됐던 1500년 된 여성 미라를 발견됐던 장소에 재매장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 영화 '미이라'(2017) 스틸 이미지 / 연합뉴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 영화 '미이라'(2017) 스틸 이미지 / 연합뉴스]

1956년 키르기스 남부에서 발견됐던 이 미라는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대선 하루 전날인 10월 14일 원래의 장소에 묻혔다.

하지만 위원회가 심령술사와 무당들의 주장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알려지면서 키르기스 안팎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심령술사들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만약 이 미라가 진공 상태로 국립박물관에 계속 보관될 경우 나라에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자신을 무당으로 밝힌 자미라 무랏베코바는 영혼 세계에서부터 다시 미라를 재매장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그는 "미라는 절대 죽지 않는다. 그는 처음 발견됐을 때부터 살아있었다"며 "그를 다시 묻음으로써 대선의 유혈사태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는 과학을 퇴보시키는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물러나는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현 대통령도 재매장 결정이 가짜 무슬림들이 벌인 일이라고 비판하자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던 투겔바이 카자코프 문화부 장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매장이 대선 전날 이뤄진 것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는 불안정한 키르기스 정계에서 미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샤머니즘적 관행이나 미신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지난 2011년에는 의회에서는 악을 내쫓는다는 명목으로 양 7마리를 도살하는 의식이 행해지기도 했다. 위원회 소속 고고학자인 카디차 타사바예바는 "이들을 광신도나 주변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말하면 정부는 그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한다"고 밝혔다.

정우영 인턴기자 chung.w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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