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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전에 대한 작은 생각, 역사의 방향이 달라졌을까

중앙일보

입력

전쟁은 반드시 살상과 파괴가 동반되므로 일반 사람들이 반기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전쟁은 권력자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시작된다. 그런데 아무리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라도 막상 승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면 굳이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그 이익이 감정이나 자존심처럼 무형의 부분도 있지만 영토나 경제적 수탈처럼 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20세기 들어 벌어진 양차 세계대전도 경제사적으로 볼 때는 선ㆍ후발 패권 국가 간의 시장 쟁탈전이었다. 내가 더 잘살기 위해 원료 공급처와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이 절실히 요구되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나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가정을 하나 들 수 있다. ‘내가 배부르면 과연 전쟁이 없었을까?’하는 점이다.

이런 생각하도록 할 수 있는 모티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석유다. 1970년대 오일 쇼크를 불러온 후, 툭하면 세계 경제가 출렁거리게 만들 정도로 석유가 현대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크지만 과거에도 중요한 자원이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이유 중 하나가 코카서스에 매장된 엄청난 석유였다. 일본이 진주만을 급습하며 태평양 전쟁을 개시한 결정적인 동기 또한 미국의 석유 금수조치였다.

일본의 진주만 급습으로 침몰 중인 전함 애리조나. 일본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석유 금수조치는 일본이 도발을 결심한 도화선이 되었다. [사진 wikipedia]

일본의 진주만 급습으로 침몰 중인 전함 애리조나. 일본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석유 금수조치는 일본이 도발을 결심한 도화선이 되었다. [사진 wikipedia]

당시에 추축국이 확보하였던 유일한 석유공급처라면 루마니아의 플로에스티 유전뿐이어서 석유에 대한 절박함은 컸다. 특히 100퍼센트 외부에서 석유를 도입한 일본은 더욱 급박했다. 그런데 석유 때문에 고민에 빠져있던 추축국들은 정작 전쟁 전부터 엄청난 보물을 발밑에 깔고 있었다. 이탈리아가 확보하고 있던 리비아나 일본이 통치하고 있던 만주의 지하에 엄청난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들 유전들은 공교롭게도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에 발견되어 현재도 석유를 생산 중이다. 이 유전들은 1930~1940년대의 소비량을 기준으로 보자면 석유 때문에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을 만큼 많은 양이다. 오히려 수출을 해서 커다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수준이었다. 이제는 중국이 석유 수입국이 되었지만, 1963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만주의 다칭(大慶) 유전은 1990년까지 국내 수요를 충족했다. 지금도 여전히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다칭 유전에서 석유 채굴을 시작하며 만세를 부르는 중국의 엔지니어들. 미국의 석유 금수에 반발하며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패망할 때까지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만주에 엄청난 유전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사진 wikipedia]

다칭 유전에서 석유 채굴을 시작하며 만세를 부르는 중국의 엔지니어들. 미국의 석유 금수에 반발하며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패망할 때까지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만주에 엄청난 유전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사진 wikipedia]

만일 일본이 강점기에 이 유전을 발견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제국주의 팽창 욕심 때문에 중국과 동남아로의 침략을 가속화했을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졌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미국에 대해 먼저 도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석유를 아직 발굴하지 못한 일본은 미국의 금수조치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진주만을 급습했다. 놀라운 점은 그러면서도 일본은 마치 러일전쟁처럼 전면전으로까지는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 낙관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초전에 미 해군의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시키면 미국이 두려움을 느끼고 석유를 계속 공급하는 방향에서 적당히 협상에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엄청난 착각이었고 비참한 패망을 이끄는 단초가 되었다. 이처럼 상대를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무모한 도발을 시작했을 만큼 일본에게 석유는 중요했다. 때문에 충분한 석유가 있다면, 즉 배가 부르다면 결코 무모한 진주만 공습은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칭 유전에서 채굴된 원유가 보내지는 단둥시 외곽의 대북송유관 가압시설. 만일 중국이 유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이를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삼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진 중앙포토]

다칭 유전에서 채굴된 원유가 보내지는 단둥시 외곽의 대북송유관 가압시설. 만일 중국이 유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이를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삼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진 중앙포토]

그렇다면 역사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고 우리의 해방도 좀 더 늦게 찾아왔을지 모른다. 때문에 다칭 유전이 전쟁 후에 발견되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다행스런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 핵 문제 때문에 우리가 공급 중단을 요청하는 중국의 원유가 바로 다칭 유전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금의 중국 행태를 보면 차라리 발견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남도현 군사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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