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수급자 할머니가 전 재산을 ‘유산 기부’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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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곤 계장(왼쪽)과 김순희 할머니. [사진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정창곤 계장(왼쪽)과 김순희 할머니. [사진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부산 중구 보수동 김순희(81) 할머니는 경북 풍기에서 7남매의 하나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형제가 모두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형제는  성인이 되면서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서른이 될 무렵 좋은 남자를 만난 김 할머니는 그동안 자식은 없었지만, 노점으로 생계를 꾸리며 행복하게 지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부산 중구 보수동 김순희(81)할머니 #최근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재산 기부키로 유언공증

그러나 20년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외환위기(IMF) 등이 겹치면서 노점도 잘 안 되었다. 혼자가 된 할머니는 생계가 막막했다.

이때 김 할머니와 부산 중구청 주민복지과 통합관리계 정창곤(52) 계장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정 계장은 당시 보수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었다.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정 계장은  김 할머니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된다며 수급자로 등록해줬다. 또 정기적으로 방문해 사회복지관의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할머니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챙겼다. 할머니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매월 생계비를 지원받고, 명절이나 김장철에는 쌀과 김치 같은 도움을 받도록 해준 것이다.

정 계장은 주민센터에서 구청에 발령 난 후에도 할머니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흔쾌히 달려가 할머니를 도와드렸다. 할머니가 “정 계장은 자식보다 가까운 사람이 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김 할머니는 정 계장이 도움을 줄 때마다 “정 계장님 덕분에 이렇게 많은 걸 받게 됐다. 내가 죽을 때 꼭 보답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형제자매가 모두 숨지고 없던 김 할머니는 2년 전 대장암과 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으나 최근 간으로 전이돼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얼마를 더 살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할머니는 정 계장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마음먹었다.

마침내 지난 19일 김 할머니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정 계장을 찾았다. 할머니는 “ 더 이상 미루다가는 내가 마지막으로 딱 하나 하고 싶었던 유산 기부를 못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전 재산 기부의사를 밝혔다.

정 계장은 이 사실을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신정택)에 알렸다. 결국 지난 19일 ”부산 서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김 할머니는 “내가 죽으면 전 재산을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다”는 유언 공증을 했다.

할머니가 기부한 전 재산은 보수동에 있는 32.5㎡(약 10평)의 조그만 다세대 주택 1채. 공시지가로는 2900만원 상당이다.

유언공증 소식을 들은 신정택 모금회 회장은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꼭 필요한 곳에 잘 전달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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