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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날선 공방 벌이는 트럼프 식 북핵 대응 대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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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북·미 간의 레토릭이 위태롭다. 정상이 직접 나서 날 선 공방을 벌이는 전례 없는 일이 다반사다. 군사 충돌도 배제 못할 정도다. 문제의 근원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안보 구도를 바꾸려는 데 있으나 국내에선 북한은 어찌할 수 없으니 미국을 말려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이 일어나면 우리가 피해를 볼 것이므로 큰일은 막고 보자는 단순 심리가 작동하기 쉬운 데다 촛불 민심으로 정부를 탄생시킨 뒤이니 전쟁이냐 평화냐 이분법적 관점이 통할 사회 분위기가 있다. 덧붙여 도널드 트럼프식 대응에 대한 미국 내 비판이 상당하므로 미국에도 원군이 있다는 심리도 있다. 이래저래 평화를 위해 미국과 대립도 불사하라는 주문이 정부에 가해지고 있다.

격하게 공세적인 트럼프 방식에 #어정쩡한 대응은 좋지 않은 대처 #비판보다 인정하는 태도 보이고 #일본과 협력하여 미국 설득해야

이것이 트럼프 방한 전야의 분위기다. 그간 정부는 북한의 도발 앞에서 국제적 흐름과 국내 지지층의 주문 사이를 오가는 정책 선택을 해왔다. 그 결과 대미 관계와 지지층 관리 양 측면에서 어정쩡한 상황에 처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평화 주문이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그 길로 갈 경우 일은 더 꼬인다. 우선 이제 미 본토가 북핵 위협하에 들어가는 사정이다. 미국은 자국이 위협에 처하면 과잉 반응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더구나 워싱턴에는 미국 우선을 표방하는 트럼프가 엄연히 결정권자다. 자기식으로 나갈 소지가 크다. 현실이 이러니 일본·호주는 물론 중국마저도 트럼프를 신중히 대하는 형편이다.

물론 이 나라들과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될 한국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강하게 평화를 제기할 경우 미국의 행보가 제어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미국과 신뢰가 충분하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면 지금 신뢰 관계는 충분한가? 아마도 대립각을 세워도 될 만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식 사고로는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정작 미국이 위협받게 됐는데도 한국은 자신의 이해만 챙긴다고 여길 수 있다. 동맹의 신뢰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역기능이 우려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어려워진 한·중 관계 속에서 중국은 이를 이용할 것이다. 북한도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시론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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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미국을 추종하며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목표가 전쟁 또는 평화의 이분법이 아니라 전쟁도 막고 도발도 견제하면서 협상을 열어야 하는 복합적인 것이니 그에 걸맞은 대처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간 정부도 이 점을 고심해온 것으로 보이지만, 좀 더 주문을 하자면 미국의 요구와 지지층의 기대를 그때그때 선택하는 물리적 접근보다 양 요소를 우리의 복합적 목표에 맞도록 화학적으로 융합한 정책 믹스의 틀을 먼저 만들고, 이 골격을 갖고 대미 협의를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정책의 일체성·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덜 비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고서 대미 협의 과정에서 필요한 만류를 해야 하겠지만, 그러려면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어 보인다.

첫째, 신뢰를 더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설득 입지가 생긴다. 기본은 한국이 동맹으로서 공동의 위협을 회피하지 않고 응분의 책임을 다할 용의를 견지하는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처럼 특이한 지도자에 대해서는 도덕적 판단이나 호불호의 감정을 버리고 현실주의로 대해야 한다.

둘째로 만류 작업도 공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조용히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식 접근의 부분적 효용도 인정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설득이 효과적이다. 트럼프식 강압술은 위태로운 점만 빼면 대북 억지에 효용은 있고 중국을 견인하는 성과도 있었다. 트럼프가 인정받기 좋아하고 비판받는 일에 극도로 민감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셋째, 미국을 만류하는 데 우리 혼자로는 힘이 부친다. 이런 점에서 일본과 협력이 중요하다. 한·일은 위기와 전쟁에 유사한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일 신뢰 수준은 높다. 국내에는 이를 폄하하는 가치 중심 시각이 있으나 정작 우리가 할 일은 일본과 공조해 일본이 가진 신뢰 관계를 우리의 대미 설득에 활용하는 것이다. 나아가 호주 등 역내 미국의 동맹과 공감대를 넓힐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식 대응은 조율 대상이지만 지금 대립각을 세우기에는 축적된 자산이 미진해 리스크가 크다. 신뢰를 다지면서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 출범 이래 짧은 기간의 대미 외교 결과를 갖고는 이 이상 할 수 없다. 지피지기를 잘못하고 오버하면 더 어려운 현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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