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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편의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끔찍한 폭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문학이 있는 주말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표지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표지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김숨 지음, 문학동네

당신의 신
김숨 지음, 문학동네

‘왕성한 생산력’ 같은 평범한 표현으로는 그 격렬함이나 절실함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독특한 글쓰기를 선보이는 김숨(43) 작가의 새 소설집들이다. 두 권을 한꺼번에 낸 것부터 그답다. 두터운 한 권으로 묶을 수도 있었겠지만 각각의 소설집 안에 담긴 작품들의 색깔이 서로 뚜렷하게 구분되다 보니 나눠 낸 게 정답인 것 같다.

당신의 신 표지

당신의 신 표지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는 동물, 『당신의 신』은 사람에 관한 소설이다. 하지만 『나는…』이 인간의 욕망과 편의를 위해서라면 동물과 곤충쯤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발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결국 두 소설집은 사람 얘기다. 『당신의 신』에 실린 세 편의 단편 중 표제작인 ‘당신의 신’은 여성 화자가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고발하는 내용. 그러니 두 소설집이 공통적으로 문제 삼는 건 인간의 폭력성과 동물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은 첫 단편 ‘쥐의 탄생’부터 인상적이다. 9개월 된 아이가 있는 여성 화자의 집에 쥐가 나타난다. 아내와 아무런 상의 없이 남편이 의뢰해 이 가정에 찾아든 쥐잡기 전문가들이 갈수록 정체불명임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공포 소설의 모양새를 띤다. 표제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는 부조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 해부 실습에 나선 대학교 생물학과 학생들에게 기다리던 염소가 끝내 배달되지 않으면서 벌어지는 동요와 혼란을 그린다. ‘곤충채집 체험학습’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 통과의례와도 같은 곤충채집에 관한 이야기인데, 표본을 만들려면 잡은 나비의 가슴을 ‘우두둑’ 소리가 들릴 정도로 눌러줘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심장박동이 멈출 때까지. 상식과 합리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행하는 교육, 방역, 섭생 등 인간적인 활동들이 실은 얼마나 일방적이고 끔찍한 폭력성으로 얼룩져 있는지를 들춘다.

‘당신의 신’은 페미니즘 소설로도 읽힌다. 이혼법정의 풍경 묘사를 통해 가정폭력, 내구력이 한계에 달한 듯한 결혼제도의 실상을 폭로한다. 이혼 강행은 자신의 영혼을 내다버리는 처사라는 남편의 항변에 맞서, 다시 합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는 아내는 선언한다. 아내는 남편의 영혼을 구제하는 신이 아니라고. 결혼은 함께 가꾸어야 할 제도일 뿐이라고.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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