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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경찰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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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준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준영 사회 2부 기자

김준영 사회 2부 기자

일선 경찰서에는 여성청소년수사팀, 줄여서 여청팀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문자 그대로 여성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수사하거나 미리 막는 일을 하는 곳이다. 실종사건도 이곳 소관이다.

지난달 30일 밤 경찰 112상황실에 여중생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서울 중랑경찰서 여청팀에 즉각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코드 1’ 지령이 떨어졌다. 경찰 신고 대응 5단계(0∼4) 중 하나인 코드 1은 ‘코드 0’ 다음으로 긴급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이 임박한’ 경우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은 “출동하겠다”고 보고하고 출동하지는 않았다. 여청팀은 이 건 외에도 출동 명령이 떨어진 3건의 실종사건을 맡게 됐지만 한 번도 현장으로 가지 않았다.

실종 여중생은 이튿날 ‘어금니 아빠’ 이영학으로부터 살해당했다. 시신은 강원도 영월의 한 야산에 묻혔다. 그사이 이영학 집 인근의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하고, 집 앞으로 사다리차를 부른 이는 경찰관이 아니라 피해 여중생의 부모였다. 경찰서장은 여중생 첫 실종 신고 접수로부터 나흘 뒤에야 이 사건을 보고받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부실 대응 의혹이 제기된 뒤의 관련 경찰관들 태도 역시 무책임했다. 피해자 어머니가 딸의 행적지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측은 들은 바 없다고 했다. CCTV 확인 결과 경찰관이 귀담아듣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적을 먼저 물어보는 건 경찰청 예규에 적혀 있는 현장 경찰관의 의무다.

언론사에 배포한 초동 대응에 대한 자료도 두 차례 수정됐다. 매뉴얼대로 최선을 다한 것처럼 설명했다가 정정했다. 13일간 감찰을 벌인 서울경찰청 감찰실은 결과 발표 자리에서 “당시 야간 당직팀이 다른 실종 수사 3건은 전부 출동해 잘 해결됐다”고 말했다가 “확인 결과 다 출동하지 않았다”고 번복하기도 했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재산 및 권리를 지키고 범죄의 수사, 용의자의 체포 등을 실행하는 일을 한다’.

행정학사전에 나오는 경찰의 존재 이유다. 피해 어머니의 절규를 외면하고 거짓 보고를 하는 사이에 한 14세 소녀의 생명은 무참히 희생됐다.

중랑서 여청팀은 여성과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거나 무시했다. 그리고 경찰조직은 변명에 급급했다. 경찰이 부랴부랴 경찰관 8명을 징계에 회부했지만 국민의 마음에 새겨진 배신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

김준영 사회 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