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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팩 건네주고 시간 지켜주고 … 새로운 집회문화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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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집회 때마다 질서 유지에 나섰던 경찰관. [중앙포토]

집회 때마다 질서 유지에 나섰던 경찰관. [중앙포토]

한국에서 ‘촛불’은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 사회적 함의를 갖게 됐다. 누군가는 촛불을 ‘광장 민주주의’와 연결시켰고, 다른 누군가는 ‘평화’라 말했다. 또 혹자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도구’라고 말한다. 계기는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해 4월 29일까지 주말마다 계속된 촛불집회였다. 총 23회 열린 집회에는 1700만 명(주최 측 주장)의 시민이 참여했다. 29일은 첫 촛불집회가 열린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촛불은 어느 한 사람, 한 세력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광장에는 촛불을 든 사람, 질서 유지를 위해 밤을 지새운 이들, 이를 지켜보고 기록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촛불과 그 뒤의 1년, 참가자·관찰자·비판자·관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④ 경찰의 시선 #“토요일마다 출근해 가족에게 미안”

약 4개월간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이렇다 할 폭력사태는 없었다. 참가자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경찰의 유연한 대응이 만든 결과였다.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은 지난 16일 평화적으로 집회를 이끈 한국 국민을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흘 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이를 언급하며 경찰을 치하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촛불집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촛불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이 상을 나누고 싶다. 평화적으로 집회를 관리한 경찰 여러분의 노력도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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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들은 집회가 거듭될수록 시민들의 집회 문화도 성숙해 갔다고 기억했다. 현장에서 경찰 인력을 지휘했던 한 경찰 간부는 “집회가 4차, 5차 거듭될수록 날이 점점 추워졌다. 그러면서 우리 대원들에게 ‘수고한다’ ‘고생이 많다’고 하며 핫팩을 쥐여 주는 시민도 많아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청와대 100m 앞까지 왔을 때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차분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최일선에서 집회 참가자들과 마주했던 전직 의경 최정민(22)씨는 “시민들이 우리를 보면 ‘너희가 무슨 죄냐’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해 줬다. 비난보다는 격려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고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경찰관이 되고 싶어 의경으로 복무했다는 A씨(22)는 “입대 당시만 해도 의경 선배들이 집회·시위는 무조건 전쟁터라고 했다. 하지만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에 새로운 집회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매주 토요일 매서운 추위 속에서 고된 일에 시달려야 했다. 의경 중에는 1회 최대 24시간30분 동안 현장을 지켰던 경우도 있었다. 전직 의경인 박모(24)씨는 “동료들과 가장 많이 한 말은 ‘오늘 언제 끝나지’였다”고 털어놨다. 한 경찰관은 "놀아주기 바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토요일마다 출근할 때 참 미안했다”고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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