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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 흉어 … 고성 명태잡이 배 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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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명태잡이 어선 미성호의 선원들이 16일 오전 대진항 동쪽 8마일 해상에서 명태가 드문드문 걸린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16일 오전 5시50분 본지 취재팀이 동승한 명태잡이 배 미성호(10t)가 강원도 고성군의 거진항을 출발했다. 1시간 뒤 대진항 동쪽 8마일 해상에 도착하자 10여 척의 어선이 어둠 속에서 명태잡이를 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2마일만 가면 어로한계선이다. 해경 경비정은 월북 조업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 어선 주위를 돌며 지켜보고 있었다.

선장 조가현(52)씨가 키를 잡고 4명의 선원이 닷새 전 바다에 쳐놓은 그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1닥(길이 50 ~ 150m)씩 배위로 올라오는 그물에는 두세 마리의 명태가 걸려있을 뿐이다. 20닥을 연결한 그물 한 틀을 깊이 600m 정도의 바닷속에서 끌어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20분 내외.

미성호는 5분을 이동해 다시 한 틀의 그물을 당겼다. 아직 세 틀의 그물이 남았지만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았다. 명태가 기대만큼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미성호가 잡은 명태는 200여 마리. 연료비 등 경비(30만 ~ 40만원)를 빼면 겨우 인건비를 건질 정도다. 다른 어선도 어획량이 시원치 않아 이날 고성군 수협에 위판한 명태는 모두 700여 마리에 불과했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17일까지 고성군 내 거진.대진.아야진 소속 어선이 잡아 위판한 명태는 4.3t에 불과하다. 사상 최악의 흉어다. 1985년 겨울 고성군에서만 2만2698t이 잡혔던 명태가 20여 년 만에 거의 사라진 것이다.

30여 년째 명태잡이를 해 온 미성호 선장 조씨는 "명태가 많이 날 때는 거의 매일 만선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의 명태잡이 어선은 고기가 없어 4 ~ 5일에 한 번 정도 출어하고 있다. 기름값 등 경비를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미성호의 경우 올 겨울 일곱 번 출어했으나 네 번은 빈 배로 돌아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성군은 23~ 26일 열릴 '고성 명태축제'에 쓸 명태조차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명태 어획량이 줄면서 일본산 생태 수입이 크게 늘었다. 96년 1t 이하였던 것이 급격히 늘어 2000년에는 1만t을 넘었다. 지난해에는 1만7982t을 들여왔다. 냉동명태도 2000년부터 크게 늘어 지난해 16만3594t을 수입했다.

◆ 왜 안 잡히나=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황선재 연구원은 "남획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길이 27㎝ 이하의 명태는 잡지 못한다는 금지령이 70년 해제되면서 당시 남획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초반까지 치어(노가리)까지 잡았다.

동해수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70년대 후반에 잡힌 명태의 90% 이상이 치어였다. 명태 자원이 급격히 고갈되자 96년 10㎝ 이하는 못 잡도록 했고, 2003년에는 15㎝로 확대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동해의 수온 상승이 한 원인이란 지적도 있다. 그러나 동해수산연구소의 조사 결과 68년부터 표층 온도는 매년 0.024도씩 상승해 2004년 17.67도를 기록했지만 명태가 활동하는 수심 500m의 수온은 0.5도 내외로 큰 변화가 없었다. 어민들은 북한 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쌍끌이로 고기를 잡아 남쪽으로 내려올 명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임현택 남북수산협력팀장은 "우리나라에서 명태는 더 이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며 "북한 해역에서 남북 공동 어로 등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성=글.사진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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