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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피아노 잘 치나 들어보시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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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09년부터 대결 방식의 공연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컨(왼쪽)과 폴 시비스. [최정동 기자]

2009년부터 대결 방식의 공연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컨(왼쪽)과 폴 시비스. [최정동 기자]

피아니스트 두 명이 한 작곡가의 다른 작품을 번갈아 연주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어떤 연주가 더 좋죠?” 관객은 흑 또는 백의 카드를 들어 둘 중 한 명의 피아니스트에게 투표한다. 누가 이길까?

28일 건반 위 배틀 벌이는 두 남자 #독일 출신 안드레아스 컨, 폴 시비스 #한 작곡가의 다른 작품 번갈아 연주 #청중이 흑·백 카드 투표로 승부 결정

독일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컨, 폴 시비스의 공연 ‘피아노 배틀’이다. 8년 전 두 피아니스트가 만든 이 공연은 홍콩을 시작으로 유럽·미국·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첫 내한한 2015년과 지난해 모두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매진시켰다. 각자 독주 피아니스트로서도 활동하는 이들은 왜 이런 공연을 할까. 28일 공연을 위해 내한한 이들은 24일 인터뷰에서 “누가 더 잘 치는지가 아니라 누구 연주를 더 좋아하는지 묻는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시작은 우연히 했다. 2009년 홍콩시티페스티벌의 주최측은 두 피아니스트가 함께 연주하는 듀오 공연을 요청했다. 비슷한 나이의 독일 피아니스트란 이유에서였다. 둘은 서로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페스티벌 연주를 위해 만나서 슈베르트 등 듀오 연습을 해봤는데 둘이 완전히 다른 곡을 치는 것 같았다.”(시비스) 근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영국에서 공부한 피아니스트 시비스는 작곡가가 어떤 생각으로 곡을 썼는지 의미를 찾는 쪽이었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방식의 연주자다. 하지만 컨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의 독일 피아니스트로,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18세쯤 ‘절대로 평범한 음악회는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는 컨은 음악이 진행될 때 연주자가 느끼는 즉흥적인 감정을 중시했고, 특히 수백년 전의 음악에도 현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듀오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둘은 이렇게 합의했다. ‘관객에게 누가 더 좋은지 물어보자!’

청중은 이 새로운 방식을 즐긴다. “보통 클래식 공연에서 청중은 그저 ‘잘 하는 연주자겠지’하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공연에서는 다르다. 청중은 둘 중 한 명을 골라야하기 때문에 눈을 반짝이면서 연주에 집중한다.”(컨) 청중과 연주자 모두 마음놓고 재미를 추구하는 공연이란 뜻이다. 시비스는 “형식은 배틀이지만 대결이 너무 심각해지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수준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기존의 클래식 공연과 형식이 다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두 피아니스트는 ‘배틀’이란 개념을 자신들이 발명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두 음악가가 같은 주제를 놓고 즉흥적으로 음악을 쓰거나 연주의 기술을 가지고 대결한 건 17세기 바로크 시대부터였다.”(시비스) 즉 클래식 음악에도 대결이라는 흥미있는 요소는 오랜 전통이었고 최근의 엄숙한 분위기는 지나치다는 말이다. “음악을 몰라도 자신의 즉각적인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던 사람도 우리 공연장을 찾아오곤 한다.”(컨) 그래서 두 피아니스트는 어떤 곡을 연주할지 미리 공개하지 않는다. 청중이 선입견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두 피아니스트는 배틀의 형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청중을 무대 위로 올려서 공연에 참여하게 하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더했다. 연주할 곡목과 투표 방식은 물론, 피아노 위치와 조명까지 두 피아니스트가 연출한다. 이번 내한 무대에서는 6번의 라운드에서 쇼팽·리스트·드뷔시 등을 연주하며 대결을 펼치고 청중의 투표를 받을 예정이다.

두 피아니스트가 비밀로 하는 건 연주 곡목 말고도 또 있다. 둘의 정확한 나이, 지금까지 배틀의 승률 같은 것이다. 연주자, 연주될 곡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도 즐길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독일·대만에서 6000~7000석까지 매진시켰지만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못해봤다. 더욱 여러 곳에서, 더 많이 공연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컨) 이번 내한 공연은 28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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