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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왜 트럼프 '평택 방문' 요청했나? '험프리스' 숨은 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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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7~8일 방한하면 경기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를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한미 양국에게서 나온다.

트럼프, DMZ 대신 평택 험프리스 기지 방문 유력 #靑 "국익 차원에서 DMZ보다 평택 방문이 유리" #한미동맹·방위비 협상·중국 압박 등 숨은코드

23일(현지시각) 미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우리(미국)는 험프리스 기지를 방문해 달라는 초대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손님”이라고 말했다.

미 8군사령부는 신청사 개관식을 하며 평택 험프리스 기지를 국내 언론에 공개했다.오종택 기자 20170711

미 8군사령부는 신청사 개관식을 하며 평택 험프리스 기지를 국내 언론에 공개했다.오종택 기자 20170711

이 관계자는 “비무장지대(DMZ)와 험프리스 기지 둘 다 방문하기는 어려워 최종 결정을 하진 않았지만 7일 험프리스를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invitation)’이라는 말을 강조하면서였다.

 청와대는 왜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를 제외한 모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때 반드시 들렀던 DMZ가 아닌 캠프 험프리스 방문을 요청했을까.

다음달 7일 처음으로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할지를 놓고 미 행정부 내에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합뉴스]

다음달 7일 처음으로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할지를 놓고 미 행정부 내에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합뉴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5일 중앙일보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1박2일로 짧은데다 정상회담과 국회연설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안보 관련 일정은 현실적으로 한가지밖에 할 수 없다”며 “청와대 입장에서 DMZ와 험프리스 방문을 놓고 고민한 끝에 험프리스 방문이 보다 국익에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의 DMZ 방문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DMZ 방문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계기 외에 더 나아간 메시지는 주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험프리스 방문에는 두가지 이상의 메시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굳건한 한ㆍ미 동맹의 재확인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년부터 진행될 한ㆍ미 방위비 분담금의 '오해와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이다. 평택항을 통해 중국을 마주하고 있는 평택의 지리적 입지도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을 유도해내야한다는 메시지를 부각할 수 있는 최적지라는 설명이다. 

①한ㆍ미 동맹의 상징

험프리스의 공식 영상에는 주한 미국과 함께 한국 육군 소속의 카투사(KATUSA)들이 함께 훈련을 받는 장면이 다수 소개돼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군과의 공동작전을 비롯해 평택 지역 사회와의 융합을 다룬 장면도 많다.

험프리스는 미국의 해외 단일기지로는 세계 최대다. 1467만7000㎡(444만여 평) 규모로 여의도 면적(290만㎡ㆍ87만 평)의 5배, 판교신도시의 1.6배에 달한다. 평택기지는 1962년부터 ‘캠프 험프리스’라고 불린다. 1961년 작전 도중 헬기 사고로 사망한 미 육군 장교 벤저민 K. 험프리 준위를 기념한 이름이다. 미군 지휘시설인 주한미군사령부와 8군사령부 청사가 수원 화성 성곽 이미지를 형상화해 지어진 것도 한ㆍ미 동맹의 단면이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간의 합의에 따라 서울 용산을 비롯해 동두천 2사단 등 주한미군 전력이 험프리스로 총집결한다. 주한미국의 ‘작전 허브’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 내에 있는 수영장. 공식 동영상 캡처.

평택 캠프 험프리스 내에 있는 수영장. 공식 동영상 캡처.

영내에는 마트ㆍ극장ㆍ복지시설ㆍ동물병원 등이 들어선 ‘다운타운’이 2곳이 있다. 스타벅스ㆍ타코벨 등 미국계 프랜차이즈 매장도 곳곳에 배치됐다. 군인과 군무원의 자녀들이 다니도록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물론 워터파크도 갖췄다. “미국 본토의 소도시를 그대로 옮겨왔다”는 평가가 나올법하다. 그러면서도 장성과 영관 장교를 위한 개인 주택은 한국의 전통 디자인을 따 기와를 얹는 등 한ㆍ미 동맹의 상징물을 곳곳에 배치했다.

캠프 험프리스 영내에 있는 미군의 주거 시설과 수영장.

캠프 험프리스 영내에 있는 미군의 주거 시설과 수영장.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험프리스에 방문하는 자체가 오랜 기간 혈맹의 관계를 맺어온 양국간의 관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북핵 문제는 한ㆍ미 동맹을 기초로 한 국제적 공조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기초가 되는 한ㆍ미 동맹의 현실을 가장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번 방문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국회 연설을 한다"며 "한국에서 하는 두 개의 중요한 연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연설 외에 나머지 하나는 험프리스에서 굳건한 한ㆍ미 동맹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②한ㆍ미 방위비 분담금의 현주소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동맹국들을 향해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공공연하게 요구해왔다. 지난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첫 한ㆍ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문 대통령을 옆에 세워둔 채로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공정한 부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주둔 비용의 분담은 굉장히 중요하고 앞으로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달 뉴욕에서의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반도에 미국의 전략자산 순환 배치를 확대한다는데도 합의했다. 이 역시 ‘돈’으로 직결되는 문제다.

한ㆍ미 방위비 분담금은 2019년부터 새로 적용된다. 당장 내년부터 재협상이 시작된다. 2014년 타결된 제9차 한ㆍ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유효기간 5년)에 따라 올해 한국은 미국에 약 9507억원을 방위비로 지급했다. 트럼프가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부담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의 규모. 단일 기지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의 규모. 단일 기지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다.

 23일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험프리스는 비교적 새로 지은 한반도 내 핵심 미군기지로 솔직히 (한ㆍ미 간) 비용 분담의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왜 ‘미국 입장에서’ 좋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올까. 지난 7월 험프리스 미8군 사령부 신청사 개관식에 참석했던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토머스 반달 8군 사령관은 우리에게 ‘107억 달러가 투입된 최대 규모의 초현대식 기지 조성에 한국 측이 비용의 94%를 부담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했다”고 적었다. 반달 사령관은 “미군 장병과 그 가족은 최고 수준의 근무여건과 복지와 오락을 향유하게 됐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평택시는 대규모 변전소와 하수처리시설을 건설해줬고, 정부는 코레일 철도교량과 역을 신설하였으며,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4차선 교량과 도로를 만들어 주었으며, 추후 건설될 가족 아파트 숙소도 추가 조성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캠프 험프리스의 공식 소개 영상에 등장하는 조망도. 공식 동영상 캡처.

캠프 험프리스의 공식 소개 영상에 등장하는 조망도. 공식 동영상 캡처.

실제로 험프리스가 유튜브에 공개한 공식 소개 영상에서도 기지의 최첨단 시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측에 무조건 분담금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막상 한국측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며 건설한 험프리스의 상황을 직접 보게될 경우 지금까지의 ‘오해’가 상당 부분 해소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③중국을 마주한 평택항

험프리스의 공식 소개 영상은 평택의 위치를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북한의 평양과 서울의 위치, 그리고 중국을 마주한 평택 험프리스 기지의 위치를 3D 지도 영상으로 제시하는 형식이다. 중국을 마주하고 있는 위치는 북핵 해결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캠프 험프리스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평택의 위치. 평택항을 통해 중국과 대면하고 있다.

캠프 험프리스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평택의 위치. 평택항을 통해 중국과 대면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준비돼 있다”며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얼마나 완전하게 준비돼 있는지 안다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군사옵션’ 카드를 염두에 둔 말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관련해 “(우리는) 아주 좋은 극히 예외적인 관계”라며 “중국은 북한 문제에 있어 정말로 우리를 돕고 있다. (시 주석이) 북한과 관련해 무언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할 힘을 갖고 있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량의 93%가 중국을 통할 정도”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뉴욕 롯데 팰리스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17.9.22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뉴욕 롯데 팰리스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17.9.22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2기 체제를 확립한 당대회 이전까지 중국은 대북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국제적 공조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지금까지의 입장을 고수하기는 어려월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북 제재 등 현재 진행되는 국제 공조의 주요축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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