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화장실’ 몰카인가 아닌가…현장검증 나선 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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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이 청파동의 한 여성 화장실에서 전자파탐지기로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중앙포토]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이 청파동의 한 여성 화장실에서 전자파탐지기로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중앙포토]

음식점 화장실에서 여직원 몰래 훔쳐보고 이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으려 했다면 ‘공중화장실’ 몰카일까 아닐까.

지금까지 법원에서는 이에 대해 ‘무죄’로 판단해왔다. 음식점 화장실은 ‘공중화장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건과 관련해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이영진)는 23일 이례적으로 범행 장소인 화장실을 직접 찾아가 현장검증을 벌였다고 문화일보는 전했다. 그동안 엄격하게 규정되어왔던 ‘공중화장실’의 판례가 깨질지 이목이 쏠린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직장인 A(25)씨는 경기 시흥시 정왕동의 한 주점에서 회식 중 동료 여직원을 화장실까지 따라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려다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범행 장소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공중화장실’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 행위’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 신체에 대한 몰래카메라 촬영은 성폭력처벌법 14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촬영은 하지 않고 훔쳐보기만 하거나 앞선 사건과 같이 카메라로 촬영하기 전에 잡힌 경우 성폭력처벌법상 공공장소 침입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공공장소 침입의 형량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높지 않지만,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신상공개가 가능하다.

재판부 판사 3명과 검사, 변호사 등은 범행 장소인 화장실을 찾아 이곳이 건물 이용자뿐 아니라 행인들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인지를 살폈다. 검찰 측은 해당 건물과 대로변 행인들의 동선을 위주로 설명하며 공중화장실인 점을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 측은 공중화장실을 엄격히 규정하는 판례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이 부장판사는 “사건 장소가 법령에 따른 공중화장실로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외부인의 출입 제한 여부와 설치 목적 등을 더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 공중화장실법은 공중화장실을 ‘공중이 이용하도록 제공하기 위해 국가, 지방자치단체, 법인 또는 개인이 설치하는 화장실’로 정의한다.

법원은 그동안 음식점 화장실은 ‘음식점 주인이 불특정 다수의 자기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한 화장실’로 보고 성범죄 처벌법에서 규정한 ‘공중화장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려왔다. 이 때문에 법 문언에만 지나치게 매달려 국민 상식과 괴리된 판결을 내렸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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