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남북 묶는 민족주의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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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강령 분석해보니 …

'시장과 성장' 대 '정부와 분배','가족 가치' 대 '개인 가치','작은 정부' 대 '능동적인 정부'.

열린우리당은 분배.개인.능동적인 정부를, 한나라당은 시장.가족.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열린우리당은 2003년 11월 창당 때 만들었던 당 강령을 대폭 정비한 신강령안을 15일 마련했다. 지난해 4.30 재.보선 참패 직후 개정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이다.

당의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게 목표였다. 김영춘.이인영 의원과 김태일 영남대 교수, 당의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소가 중심이 돼 만들었다. 신강령안은 '제2 창당'을 선언하는 18일 전당대회에서 채택된다. 한 달 전엔 한나라당도 강령을 전면 개정했다. 두 정당의 정책철학은 어떤 색깔일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새 강령을 분석해 봤다. 진보 계열의 김호기(사회학) 연세대.김형기(노동경제학) 경북대 교수와 보수 계열의 김일영(정치외교학) 성균관대 교수가 분석을 도왔다. 통일외교 분야 분석작업에는 김태효(정치외교학과) 성균관대 교수가 참여했다. 양당은 총론에선 같은 목소리를 냈다. 모두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인권을 강조한다. 복지와 성장, 중산층과 소외계층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그런 목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김호기 교수는 "민주 대 반민주 같은 구별이 사라지는 추세"라며 "보수 대 중도 진보로 정당 구도가 변하고 있다"고 했다. 김형기 교수는 "모든 약속을 담으려 하는 면도 있으나 시장과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선 차이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 강령은=정당이 추구하는 철학과 목표를 명시한 프로그램이다.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이 만들어진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선 강령보다 정치 지도자의 성향이 중요했다. 이념과 노선,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선진적인 정당정치에선 강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주화 계승" vs "합리적 보수"

◆ 누구를 계승했나=정당의 혈통을 따지는 대목에서 양당이 다른 시각을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항일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4.19 등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계승한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6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했다. 항일과 민주화 투쟁을 부각한 열린우리당에 비해 한나라당은 경제개발과 '근대화 세력'을 껴안고 있다. 김일영 교수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정통성을 찾는 뿌리가 다름을 보여준다"고 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김태효 교수는 "열린우리당은 남북을 묶는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북한의 개방과 인권개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배 정의를" vs "성장 우선을"

◆ 분배인가 성장인가=시장의 취약점을 보완하느냐, 장점을 활성화하느냐의 철학 차이가 드러난다. 열린우리당은 "우리 사회는 성장이 분배로 이어지지 않는 메커니즘이 여전하고, 빈부와 교육 격차의 악순환으로 빈곤이 대물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조세 정의'를 부각시킨다. 반면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친기업적이다. "국내외 기업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집단이기주의.분배지상주의.포퓰리즘에 맞서 헌법을 수호한다"고 강조한다. 김일영 교수는 "열린우리당은 사회통합을 위한 분배를 강조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자유시장경제에 입각해 성장과 시장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인의 자유" vs "가족의 가치"

◆ 공동체인가 개인인가=한나라당은 바람직한 사회상으로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를 든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기부문화와 상류층이 도덕적 책무를 다하는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개인의 자유와 소수의 인권에 적극적이다. 열린우리당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소수자의 권리 등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그 어떤 형태의 국가지상주의도 반대한다. 김호기 교수는 "이 부분에선 한나라당은 미국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온정적 공동체 주의'와 유사하며 열린우리당은 개인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민주당의 정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요" vs "그래도 기업"

◆ 작은 정부와 능동적 정부=열린우리당은 정부가 나서서 국민에게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 성장과 국민 복지를 위해선 적극적 역할을 하는 '능동적 정부'가 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기업과 노동자,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도 강조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큰 시장, 작은 경제'를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정부는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역할만 하고, 기업들이 자기책임 원칙에 입각해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기 교수는 "한나라당은영국.미국형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반면 열린우리당은 정부나 사회집단이 시장에 개입하는 '유럽형 조정시장경제'의 요소가 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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