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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까지…늘어나는 개물림사고에 뿔난 시민들

중앙일보

입력

“내 반려견은 안 그럴 것이라는 착각이 사고를 부르는 것 같아요.”

지난 22일 오후 9시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에서 만난 최모(33)씨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운동하는 시민들 사이로 달리는 흰 강아지를 보면서였다. 유명 한식당 대표가 아이돌 스타 최시원이 키우는 프렌치 불도그에 물려 패혈증으로 숨진 사고는 공원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었다.

최씨는 "최근 개 물림 사고도 있었는데 자신의 반려견은 그렇지 않다는 착각이 사고를 부르는 것 같다. 나도 반려동물(고양이)을 키우지만 키우는 사람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얀 강아지의 주인 A씨는 "작고 순해서 목줄을 채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반려동물 관리와 안전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염려는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목줄 및 입마개 의무화’, '맹견관리법' 등 견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에 대한 청원 수십 개가 올라왔다. 22일 이런 내용을 담은 '최시원 특별법' 청원 참여자는 하루 만에 800명을 넘어섰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서울 시내 한강 공원에서 반려동물에게 목줄을 채우지 않는 주인 등을 계도한 건수는 크게 늘고 있다. 2013년 2만8429건, 2014년 3만2260건, 2015년 3만9983건, 지난해는 3만8309건이었다.

서울시는 반려견 목줄을 채우지 않거나 배설물을 제대로 치우지 않는 경우 계도를 한다. 목줄을 채우지 않았을 때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지만 지난해 계도 건수 3만8309건 중 실제 과태료 부과는 55건(0.14%)에 불과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개에 물려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는 2014년 1889명, 2015년 1841명, 2016년 2111명이었다.

자신이 키우던 반려견에 물려 숨진 사례도 있다. 지난 7월 경북 안동에서 70대 여성이 기르던 풍산개에 물려 사망했고, 지난 6일 경기도 시흥에서는 한 살짜리 여자아이가 진돗개에 물려 목숨을 잃었다.

현행 동물보호법과 시행규칙은 반려동물과 외출시에는 목줄 등 안전조치를 해야 하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맹견은 입마개를 채워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어길 시 처벌은 5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가 전부다. 위험에 비해 너무 가벼운 처벌은 개물림 사고를 방조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시민이 반려견과 함께 한강시민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중앙포토]

22일 시민이 반려견과 함께 한강시민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중앙포토]

주요 국가들은 맹견 사육을 제한하고 사고 발생시 책임도 무겁다. 영국은 1991년 '위험한 개 법(Dangerous Dogs Act)'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이에 따르면 일부 견종을 통제견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키우려면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또 공공장소에서 입마개 착용은 물론 대인 배상 보험 가입이나 중성화 수술, 마이크로칩 삽입을 의무화했다. 개가 사람을 물어 상해를 입힐 경우에는 최대 5년, 사망에 이를 경우 최대 14년의 징역이 반려견 주인에게 선고될 수 있다. 프랑스도 일부 맹견을 키우려면 당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도 있다. 지난 7월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3개월 이상 맹견을 동반하고 외출시 목줄, 입마개 등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목줄, 입마개 등을 하지 않아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앞서 국회에 맹견 사육과 관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맹견관리법'이 2006년과 2012년 각각 발의됐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찬종 이삭 애견훈련소 소장은 "반려견 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의식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비애견인과 애견인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비애견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은 피해를 봐도 내 강아지의 스트레스는 안된다는 자세는 지양해야한다. '페티켓'(반려동물을 뜻하는 펫과 에티켓의 합성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정책적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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