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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72번째 생일에 '채찍과 당근' 동시에 내민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2주년 경찰의 날 기념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2주년 경찰의 날 기념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72번째 생일을 맞은 경찰에 내민 건 ‘당근과 채찍’이었다. 경찰의 날(10월21일)을 하루 앞둔 20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였다.

"내년부터 수사권 조정 본격 추진" #국정기획자문위 안에 비해 오히려 후퇴 #경찰 내부서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와

기념식이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세종문화회관 등 실내에서 주로 열렸다. 광화문광장은 대규모 집회가 주로 열려 경찰과 시민이 대치하는 공간이었다. 동시에 지난 겨울과 봄 촛불집회가 열린 곳이다. “촛불집회의 소통과 자유, 평화의 의미를 고려한 장소 선택이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채찍’을 먼저 들었다. 문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경찰이 되려면 더 확실하게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경찰 스스로 경찰개혁위원회와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킨 의미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위법한 경찰력 행사와 부당한 인권침해에 대해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 집회와 시위 대응에 과다한 경찰력이 낭비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지난 6월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 권고를 통해 내부 개혁을 진행 중이다. 물대포와 차벽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이 공식 사과했다. 지난 12일에는 백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한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잘못을 인정하고 청구를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기념식 인사말을 통해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7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발언을 마친 뒤 손뼉 치는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이철성 경찰청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7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발언을 마친 뒤 손뼉 치는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이철성 경찰청장.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당근’도 함께 제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경찰의 오랜 숙원인 수사권 조정 추진에 대한 약속이다. 문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 두 기관의 자율적인 합의를 도모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중립적인 기구를 통해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경찰 2만명 증원 계획과 직장협의회 설립 허용 등의 구상도 함께 밝혔다.

대통령 발언 뒤 최근 궁지에 몰렸던 경찰에서는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부실 대응 의혹,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과 전·현직 경찰 친목 모임인 경우회에 대한 검찰 수사 등으로 최근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정권 초기와 달리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수사권 조정 추진 계획을 밝혀줘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표 내용에 아쉬움을 표하는 경찰관들도 적지 않다. 지난 8월 국정기획자문위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비해 오히려 후퇴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시 발표된 자료에는 “2017년까지 수사권 조정안 마련. 2018년부터 시행”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자문위 안에 들어 있는 ‘수사권 조정’이라는 표현에 불만을 나타낸 경찰관들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집 27페이지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겠다”는 표현을 썼다. 수사·기소 분리는 검찰에게 기소권만 보장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 내부에는 '수사권 조정'이라는 용어보다 '수사·기소 분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수사권 조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추진 시기도 2018년으로 한 해 늦춰졌다. 한 경찰청 간부는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을 진행 중이지만 결국 이전 안보다 후퇴한 셈이다. 앞으로 수사권 조정안이 어떻게 나올지,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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