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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구에만 장애인학교” … 혐오 표현 범람시대 “여혐은 잘못” 지적했다 “죽여버리자” 공격받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젊은 아가씨들이 시위에 나오다니 기특하다.”(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작년 주요 사이트 혐오발언 8만 건 #여성혐오 최다, 성소수자·장애인 순 #비판한 사람 신상 털리고 보복 일쑤 #“차별금지법 제정, 시정기구 신설을”

“동성애자들은 부모님한테 죄송해 하면서 살아야 한다.”(한 교사의 발언)

“왜 강서구에만 혐오시설(장애인 특수학교)이 들어오나.”(주민토론회 중)

“여권 없는 중국인이 많아 밤에 칼부림이 자주 난다.”(영화 ‘청년경찰’ 중)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인종 등 차별적 인식이 깔린 ‘혐오 표현’은 때와 장소,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형사정책연구원이 16일 서울 동교동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연 ‘혐오 표현에 대응하는 법’ 토론회에서는 온라인에서의 실상을 분석한 결과가 제시됐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빅데이터 분석업체 아르스프락시아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오늘의 유머’ ‘일간베스트’ ‘디씨인사이드’에 나타난 4대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은 8만1890건이었다. 이 중 5만1918건이 여성과 관련된 이른바 ‘여혐’ 표현이었다. 성소수자 혐오는 그 절반에 가까운 2만783건이었고, 장애인 혐오(6771건)와 외국인 혐오(2418건)가 뒤를 이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사건은 1만4908건이다. 2012년 5684건, 2014년 8800건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접수되지 않은 사건이나 접수 이후 ‘경미 사건’으로 취급돼 처벌이 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날 토론회에서 일상 속에서 범람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적절했거나 부적절했던 다양한 대응 사례들이 제시됐다.

혐오 표현 피해자들은 잘못을 지적했다가 되레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강간 피해를 당한 호주 여성을 도우려고 현지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A씨는 “광장으로 끌어내 죽여버리자” 등 온라인 댓글에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B씨는 여성들의 사진을 임의로 퍼나르며 돌아가면서 비판하는 ‘조리돌림’하는 댓글 행태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뒤 자신의 출신 학교와 개인 SNS 주소 등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그는 두 달간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외출했다.

혐오에 또 다른 혐오로 맞서는 ‘미러링’도 해법이 되기 어렵다. 지하철의 임산부 좌석에 앉는 남성들의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오메가패치’ 운영자는 검찰에 넘겨졌고, ‘○○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문단·영화계 등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고발에 나섰던 이들은 명예훼손 피의자로 고소됐다. 박선영 변호사는 “미러링은 매우 해학적이고 창의적인 차별 철폐 운동이 될 수 있지만, 당초의 목적의식이 사라지고 언어 습관화되거나 누군가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악용되면 오히려 혐오의 총량을 증가시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페미당당’ 활동가 심미섭씨는 법을 통한 해결 방법에 대해 “처음 당한 사람한테는 너무 막막한 일이고, 이미 겪어 본 사람에게는 너무 절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 단계에서 ‘경미 사건’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일선에서는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으니 (이에 대해 혐오 표현을 하는 것은) 사회 상규에 반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치부된다고 한다.

또 법적 처벌은 더 큰 보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초 사이트에 자신의 얼굴을 올린 남성을 고소했던 C씨는 해당 남성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자신에 대해 더욱 노골적으로 욕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을 차별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근거로 상담, 조사, 자율적 해결, 조정, 권고, 소송 지원 등 여러 규제 방법 중 필요한 수단을 활용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차별시정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정책연구원 추지현 전문연구원은 “필요한 것은 ‘당사자’를 넘어서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대응이다. 차별 시정의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 당사자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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