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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치보복" 발언 놓고 정치권 '나비효과' 촉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던진 “정치 보복” 발언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도 여야간 공방으로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열린 공판에서 “구속과 탄핵까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참한 시간이었다”며 재판 시작 이래 처음으로 심경을 밝혔다.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정치보복은 저로 끝났으면 좋겠다” 등의 날선 비난을 이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예상 밖으로 강도 높은 발언에 청와대는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을 하는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며 “반응하는 자체가 괜한 논란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들이 억지 정치보복 프레임에 동의할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 "정치보복은 저로 끝내라" #청와대ㆍ여권 "부적절하고 실망스럽다" #한국당ㆍ바른정당 통합 추진에 예상 밖 '복병' #한국당 친박 청산 주춤, 바른정당 통합파 속도조절

국회에서는 정당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여당인 민주당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에 실망과 분노만을 안겨주고 말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심경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국민에 대한 사죄의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역사적인 재판에 흠집을 내려는 ‘사법 사보타주’”라며 “헌법과 법률 위해 군림했던 독재자와 부역자들의 퇴행적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놨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도 “탄핵된 국정농단의 최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운운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측은 박 전 대통령을 두둔하며 청와대와 여권을 공격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사법부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한국당의 문제제기와 맥락이 닿아있다”고 평가했다. 친박계인 정갑윤 의원은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모든 것을 본인이 다 지고 가겠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이제 정말로 의지할 곳이 없다는 박 전 대통령의 절박하고 억울한 심경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유기준 의원은 “재판에 대한 정치적 승부수로 보인다”며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파장이 예상되는만큼 당내에서 논의 중인 출당 등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나 갑갑하고 억울하면 그런 말씀을 했나 싶다”며 “진작 이런 말씀을 하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 특히 같이 일했던 분들에 대한 말씀은 호소력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진태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꼼수로 구속 연장을 해놓고서, 재판을 거부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정도 말도 못하는가. 정말 해도 너무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반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 차이로 한국당과 갈라선 바른정당 측은 “피고인 신분으로 방어권 차원에서 본인의 심경을 얘기한 것으로 정치권에서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박정하 수석대변인)고 선을 그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이같은 공식 반응과 별개로 정치권 수면 아래서는 “박 전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출당과 보수통합 작업이 맞물려 있는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난 셈이 됐다.
23일 미국 방문을 앞둔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번주 안에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마무리 짓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작업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발언으로 이같은 구상에 먹구름이 끼게 됐다. 당장 17~18일로 예상됐던 윤리위 소집도 불투명해졌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윤리위 회부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건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윤리위 소집 여부 관련 결정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반면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출당 시기는) 여론의 동향이나 당내 여러 가지 상황과 분위기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사실상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한국당 측이 친박 청산에 주춤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바른정당 내 통합파도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통합파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보수대통합추진위원회에 대한 안건 상정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안건 상정이 무산되면 통합파 자체적으로 통추위를 구성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신중한 행보를 이어갔다.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황영철 의원(왼쪽)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자리에 앉아 있다.[연합뉴스]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황영철 의원(왼쪽)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자리에 앉아 있다.[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통합파 측 김영우 의원은 “일단 국감을 마무리하고 정치적 결단은 그 이후에 하는 게 좋겠다는 (통합파 내)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통추위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도 “현재로선 (통합을) 논의하기엔 성숙되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여러 사항들을 종합해볼 때 국감이 끝나고 바른정당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는 11월13일까지가 아무래도 중요한 시간이 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강파 측 진수희 최고위원은 “(통합파는) 안 그래도 명분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댔던 박 전 대통령 출당마저 어려워지면 통합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통합파 측을 압박했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통합파가 주도적으로 끌고가기가 부담스러운만큼 한국당의 향후 움직임과 여론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채윤경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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