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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 잘나가던 주꾸미집이 점심 장사를 안한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 ㉕ 쭈꾸미숯불구이집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25회는 주꾸미(2014년 12월 24일 게재)이다.

'쭈꾸미숯불구이집'은 매콤한 양념에 5~6시간 재운 주꾸미를 숯불에 구워먹는다. 김경록 기자

'쭈꾸미숯불구이집'은 매콤한 양념에 5~6시간 재운 주꾸미를 숯불에 구워먹는다. 김경록 기자

"주변 사람들이 맛있다면서 좋아하던 주꾸미집이 있었는데 그 집 주인 아주머니가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서 가게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우연찮게 들은 거예요. 친한 친구의 아버지랑 고향 친구라는 것만 믿고 무작정 찾아가서 나한테 달라고 했죠. "
배서한(40) 사장은 2011년 서울 용강동의 맛집으로 소문난 '쭈꾸미숯불구이집' 소식을 들었다. 2010년 6년간 다닌 유통회사를 그만두고 본인의 순댓국집을 차리기에 앞서 일 배울겸 한 순댓국집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건강이 나빠져 가게를 접으려던 전(前) 사장은 "가게를 잇겠다"는 배사장을 반겼다. 자신만의 레시피까지 아낌없이 알려줬다. 주꾸미는 한 번도 안 다뤄봤지만 평소 요리를 즐겼던 배 사장은 한 달 만에 비법을 모두 전수받았다.

매일 오전 신선한 주꾸미를 가져와 사장이 직접 손질한다. 김경록 기자

매일 오전 신선한 주꾸미를 가져와 사장이 직접 손질한다. 김경록 기자

유통회사 경험 살려 신선도에 올인
여기에 유통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식자재 관리를 전보다 더 철저히 했다. 배 사장은 "유통회사 다닐 때 마트 유제품을 담당했어서 신선도에 굉장히 예민했다"고 말했다. 배 사장은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아예 점심 장사를 포기하고 가게 문을 오후 5시에 열기 시작했다. 그는 "최상의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온종일 장사하는 것보다 저녁에만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며 "하루 이틀 장사하고 끝낼 게 아니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더 전망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영업시간은 밤 10시까지지만 더 일찍 닫는 날도 있다. 재료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배서한 사장은 날씨, 휴일 등을 고려해 하루 안에 다 팔 수 있는 양만 준비한다. 김경록 기자

배서한 사장은 날씨, 휴일 등을 고려해 하루 안에 다 팔 수 있는 양만 준비한다. 김경록 기자

"모든 손님에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팔아야하니 딱 그날 팔 양만큼만 준비해요. 비가 오는지, 더운지, 공휴일인지 등을 따져가며 양을 준비하고는 그걸 다 팔면 미련없이 문을 닫아요. 어떤 날은 저녁 8시에 문을 닫은 적도 있어요. "
영업은 오후 5시부터지만 장사 준비는 이른 아침부터 한다. 매일 오전 3시간 동안 주꾸미 내장을 손질하고 먹기 좋게 자른 뒤 양념에 숙성시킨다. 양념이 주꾸미에 배는 시간이 5~6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재료만큼 공을 들이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직원인데,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 일하고 있는 서빙 아주머니다. 자신도 몇 년 전까지 한 회사의 소속 직원이었다는 점을 늘 떠올린다고. 비 사장은 "직원 입장에서 좋은 회사는 뭐니뭐니 해도 돈 많이 주고 복지까지 잘 갖춘 곳"이라며 "주변에 비해 서빙 아주머니 월급을 가장 많이 준다고 스스로 자부한다"며 말했다. 또 아주머니가 가끔 실수를 해도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단다. 잘하려다 한 실수를 문제삼으면 오히여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용강동 '쭈꾸미숯불구이집' #재료 신선도 위해 과감히 점심 장사 포기 #아침부터 주꾸미 양념 재워야 제맛나 #젊은층 좋아하는 매운 맛에 주꾸미 라면도

숯불에 구운 주꾸미는 불에 살짝 구운 생김에 싸먹는다. 김경록 기자

숯불에 구운 주꾸미는 불에 살짝 구운 생김에 싸먹는다. 김경록 기자

전 사장으로부터 모든 걸 전수받았지만 배 사장이 가게를 인수한 후 바꾼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양념이다. 전수받은 양념을 자신 또래의 입맛에 맞게 살짝 바꿨다. 양념은 고추장과 고축가루를 기본으로 하는데 들어가는 재료의 배합을 조금씩 바꿔 매운 맛을 살짝 더 강조했다. 그렇다고 혀를 마비시킬 정도로 강렬한 매운 맛은 아니다. 그는 "과하게 맵거나 짜지 않아야 해물 본연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며 "신선한 주꾸미를 내놓으려고 노력하는데 손님이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의 강한 양념에 버무리는 건 모순 아니냐"고 설명했다. 배 사장의 바람대로 손님 연령대가 많이 젊어져 30~40대 직장인도 많이 늘었다. 물론 욕쟁이 할머니로 불리던 전 주인을 못 잊고 아쉬워하는 손님도 여전히 있다.
특별한 메뉴도 개발했다. 면발 두꺼운 너구리 라면에 주꾸미를 넣어 끓이는 일명 '쭈구리'다. 꽃게와 절임고추도 함께 넣어 시원하고 매콤한 맛을 낸다.
"어릴 때부터 혼자 이것저것 해먹는 걸 좋아했어요. 김치볶음밥에 마요네즈를 넣는다거나 샌드위치 속에 비스킷을 으깨 넣기도 했어요.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아무렇게나 막 만들어도 주변에서 맛있다고 했죠. 어릴 때부터 음식 장사 싹이 보였던 것 같아요. "

1990년대 초반 문을 열어 30년이 넘은 가게 외관. 김경록 기자

1990년대 초반 문을 열어 30년이 넘은 가게 외관. 김경록 기자

손님 배신하긴 싫어
3년 전 '맛대맛 라이벌' 인터뷰 당시 배 사장은 최종 목표로 "지금 맛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진정한 맛집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걸 들었다. 그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손님들이 주꾸미를 먹어보면 하루 이틀 지난 건 금세 알아차린다"며 "손님 배신하지 않고 길게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을까.
"경기가 안좋다고 하지만 다행히 우리 가게는 줄곧 괜찮았어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음식 가격을 비롯해 모든 게 그대로예요. 제 마음도 마찬가지죠. 그때나 지금이나 분점을 몇 개 내서 돈이나 많이 벌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지금 가게를 제대로 잘 꾸려가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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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메뉴: 주꾸미숯불구이(1인분  1만5000원), 해물된장찌개 4000원 ·개점: 1991년으로 추정(배서한 사장은 2011년 인수)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37길 3(용강동 40-1) ·전화번호: 02-719-8393 ·영업시간: 오후 5시~20시(매주 일요일 휴무, 설·추석 연휴 휴무) ·주차: 주변 유료주차장 이용

송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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