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핵전력 10배로? 양 보다 질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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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미국 정부가 선보인 '리틀 보이' 원자폭탄. [AP=연합뉴스]

1960년 미국 정부가 선보인 '리틀 보이' 원자폭탄. [AP=연합뉴스]

미국 NBC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핵전력을 10배로 증강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다. 트럼프 대통령은 NBC 인가 갱신을 문제 삼겠다며 펄쩍 뛰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역시 성명을 내고 "완전히 틀렸다. 무책임한 보도"라고 반박했다.

미국 역사상 없었던 수치...핵무기 노후화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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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학자협회(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홈페이지의 '세계의 핵무기'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2017년 기준 4000기로 러시아(4300기)에 이어 2위다. 전세계 총 보유량은 9220로 미·러 두 나라가 갖고 있는 무기가 총 90%를 차지한다.

전세계 핵탄두량은 핵무기 비축 경쟁이 벌어진 1980년대에 정점을 이뤘다. 1986년 기준 6만4099기가 최고치다. 하지만 1988년 양국이 핵무기 감축 조약에 합의하면서 비축량은 가파르게 떨어졌다. 가장 먼저 핵실험에 성공했던 미국의 경우 비축량이 가장 많았던 때는 1967년(3만1255기)이었다.

전세계 핵무기 보유 현황. 역사상 피크를 이뤘던 1986년 러시아가 4만기가 넘는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 오렌지색 막대그래프는 전세계 총량, 빨간 실선은 러시아의 보유량 추이, 파란 실선은 미국의 보유량 추이다. [핵과학자협회 홈페이지 캡처]

전세계 핵무기 보유 현황. 역사상 피크를 이뤘던 1986년 러시아가 4만기가 넘는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 오렌지색 막대그래프는 전세계 총량, 빨간 실선은 러시아의 보유량 추이, 파란 실선은 미국의 보유량 추이다. [핵과학자협회 홈페이지 캡처]

문자 그대로 핵전력을 10배로 증강한다면 4만기여야 하는데, 이는 미국 핵무기 보유 역사상 없었던 수치다. 러시아의 역사상 최고치(1986년 4만159기)가 이에 근접하다. 4만기를 보유하자는 건 시계를 냉전시대로 되돌리자는 의미와 같다. 트럼프가 설사 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다 쳐도 비현실적인 발언인 셈이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2017 미국 군사력 지수에 따르면 미군의 핵 비축량 및 운송 플랫폼은 '강함' 수준이다. 전체 5등급 중 '매우 강함'에 이은 2등급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핵전력은 중간인 '보통'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핵탄두 현대화 지수는 4등급인 '약함'이라고 평가했다. 미군은 이미 비축해둔 핵무기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출 뿐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헤리티지 재단은 노후 핵무기는 미국이 핵억지력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신호를 적에게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2017 군사력 지수 중 핵전력 평가 표 캡처.

미국 2017 군사력 지수 중 핵전력 평가 표 캡처.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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