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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피겨 페어 ‘평화올림픽’ 티켓 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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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북한 피겨 페어 염대옥(왼쪽)·김주식조가 지난달 29일 네벨혼 트로피 대회에서 6위에 오르면서 평창올림픽 티켓을 확보했다. 지난 1년간 빠르게 성장한 둘은 평창올림픽 출전을 꿈꾸고 있다.[오버스트도르프 AP=연합뉴스]

북한 피겨 페어 염대옥(왼쪽)·김주식조가 지난달 29일 네벨혼 트로피 대회에서 6위에 오르면서 평창올림픽 티켓을 확보했다. 지난 1년간 빠르게 성장한 둘은 평창올림픽 출전을 꿈꾸고 있다.[오버스트도르프 AP=연합뉴스]

내년 2월9일 개막하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날 수 있을까.

염대옥·김주식, 네벨혼 트로피 6위 #8년 만에 겨울올림픽 출전권 확보 #평창 올지 미지수, 청와대선 “환영” #NYT “한반도 긴장 완화 계기 될 듯” #표현력 중점 지도한 캐나다 코치 #“북 관계자 출전권 딸지 자주 물어”

그동안 북한 선수단은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어도 자격요건을 갖춘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남북단일팀 구성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피겨 스케이팅에서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냈다. 핵·미사일 정국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스포츠를 통한 남북 교류 논의가 활발해 질 수도 있다.

북한의 피겨스케이팅 페어 염대옥(18·여)-김주식(25·이상 대성산체육단) 조는 지난달 29일 독일 오버스트도르프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네벨혼 트로피 대회에서 총점 180.09점(쇼트 60.19, 프리 119.90)으로 종합 6위에 오른 덕분에 자력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 대회엔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 페어에 걸린 20장의 티켓 가운데 이미 결정된 16장을 뺀 나머지 4장의 주인공을 결정하는 무대였다. 하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장의 티켓을 따낸 프랑스가 전날 1장의 출전권을 반납하면서 이번 네벨혼 트로피에 걸린 티켓은 5장으로 늘었다.

이미 올림픽 티켓을 확보한 캐나다·독일(2팀)·러시아·미국을 제외한 11개 팀 가운데 염대옥-김주식 조는 세 번째로 높은 순위를 확보해 극적으로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북한 피겨가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것은 2010년 밴쿠버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밴쿠버 대회 때는 남자 싱글의 이성철이 출전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북한은 2014년 소치 대회 때는 한 종목도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북한 피겨 페어 염대옥(왼쪽)·김주식

북한 피겨 페어 염대옥(왼쪽)·김주식

국제사회는 염대옥-김주식 조가 평창행 티켓을 따낸 것을 반기고 있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으로 한반도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한반도 긴장 완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30일 “북한이 평창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출전 자격을 따냈다. 이로써 긴장감이 완화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도 북한이 평창올림픽 출전자격을 따낸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1일 “피겨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선수단이 참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염대옥-김주식 조를 지도하는 북한의 김현선 코치는 이번 대회가 끝난 뒤 “평창올림픽 참가 여부는 우리 올림픽위원회의 결정에 달려있다”면서 “올림픽에 대한 그 어떤 질문도 하지 말아달라” 고 요청했다.

북한 페어 렴대옥-김주식가 훈련하고 있다. 왼쪽은 김현선 코치. [사진 조선중앙TV]

북한 페어 렴대옥-김주식가 훈련하고 있다. 왼쪽은 김현선 코치. [사진 조선중앙TV]

염대옥과 김주식은 각각 9세 때 피겨에 입문했다. 김주식은 다른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다가 2015년 대성산 체육단 피겨팀 김현선 감독을 만나면서 일곱살 어린 염대옥과 짝을 맞추게 됐다. 키 1m74㎝로 체격이 당당한 김주식은 1m51㎝인 염대옥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등 호흡이 잘 맞는다. 둘은 지난 2월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북한이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에서 따낸 유일한 메달이었다. 김주식은 당시 “하루에 3시간은 빙상 훈련, 4시간은 지상 훈련을 하는 등 일주일에 약 40시간 동안 훈련을 한다”고 했다.

  안소영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지난해 초 두 선수의 연기를 처음 봤다. 북한 특유의 통일성 있는 동작은 좋았지만, 감정 연기가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올해 3월 핀란드 헬싱키 세계선수권에서는 표현력이 훨씬 풍부해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표정도 밝아졌다”고 했다. 염대옥-김주식 조는 지난해 2월 4대륙 선수권에서는 총점 157.24점에 그쳤지만 올해 세계선수권에서는 총점 169.65점으로 1년 만에 점수를 12.41점이나 끌어올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보다 10.44점 오른 총점 180.09점으로 자신들의 역대 최고점수를 기록했다.

이들의 표현력을 끄집어낸 건 캐나다 퀘백 출신인 피겨 지도자 마르코트 남매였다. 브루노 마르코트 코치는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염대옥-김주식 조의 기술을 지도했고, 여동생인 줄리 마르코트 코치는 안무 훈련을 맡았다. 외국인 코치가 북한 피겨 를 지도하는 건 드문 경우다. 줄리는 캐나다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두 선수가 영어를 하지 못해 언어장벽을 느꼈지만, 굉장히 착하고 열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염대옥과 김주식은 마르코트 남매의 가르침과 더불어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하면서 친화력도 좋아졌다. 지난 3월 세계선수권에서는 다른 조와 파트너를 서로 바꿔서 기술 연습을 했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호텔에 들어가 두문불출하기보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호텔 복도에서 자유롭게 러닝을 했다.

마르코트 남매는 염대옥-김주식 조가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기를 바라고 있다. 브루노는 “북한 빙상 관계자가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며 “두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면 우정과 평화의 뜻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소영 부회장도 “이번 대회는 선수들의 경험쌓기보다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따기 위한 경쟁이 짙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평창올림픽 출전을 어느 정도 염두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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