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판 부정 토익으로 갑부된 20대가 검거된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어능력시험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기술연수비자를 발급받은 산업연수생들이 한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찍은 기념사진. [사진 부산경찰청]

한국어능력시험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기술연수비자를 발급받은 산업연수생들이 한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찍은 기념사진. [사진 부산경찰청]

한국에 일하러 온 베트남 산업연수생들에게 1억 2000만원의 알선비를 챙긴 20대 베트남인 A씨(27) 등 3명이 한국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베트남보다 월급이 10배가량 높은 한국에서 일하기 원하는 베트남인들이 많다는 점을 노려 한국어능력시험 점수를 부정 취득하게 해 준 신종 범죄다. '베트남판 토익부정 시험' 같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2016년부터 베트남에서 유학원 운영한 A씨 한국어능력시험 부정 취득으로 알선료 1인당 700만원 챙겨 #경찰 “2014~2015년 한국 체류하면서 부정 토익 수법 익힌 듯…일제 차량에 5000만 원 현금까지 갑부 노릇”

25일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베트남 현지에서 2016년부터 유학원을 운영 중인 베트남인 A씨는 지난 1월 기술연수비자(D-4-6) 취득 요건에 한국어능력시험 점수가 추가되자 돈벌이로 악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한다. 한국어능력시험 기준을 통과하려면 최소 6개월~1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노렸다.

A씨는 알선책인 베트남인 B씨(37), C씨(36)와 함께 ‘한국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현지인 18명을 모집한 뒤 한국어능력시험 점수를 쉽게 따게 해주겠다며 알선료를 요구했다. 1인당 알선료는 700만원에 1년간 기술연수를 받은 연수비 800만원까지 총 1500만원을 받았다. 베트남 현지 월평균 임금이 30만~4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1500만원을 갚기 위해 5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2014년부터 2년간 서울대에서 국제통상학 석사학위를 받아 한국어에 능통한 A씨는 전형적인 부정 토익의 수법을 그대로 썼다.
김병수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A씨가 한국에 머물던 2015년 당시 부정 토익으로 일당이 검거된 적이 있었다”며 “그때 A씨가 수법을 익혔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베트남인 A씨가 운영한 어학원이 입주해 있는 하노이 B대학 건물 모습. [사진 부산경찰청]

베트남인 A씨가 운영한 어학원이 입주해 있는 하노이 B대학 건물 모습. [사진 부산경찰청]

A씨는 부정 시험을 의뢰한 이들과 함께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고 무선 송수신기로 시험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D씨(35)씨에 알려줬다. D씨가 정답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한 5명에게 알려주면, 이들은 1인당 4명의 응시생에게 무전기로 답을 알려주는 수법을 썼다.

한국어능력시험 제한 시간은 100분이지만 A씨는 20분만에 문제를 모두 풀었다고 한다. A씨는 지난 3월~4월 수차례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했는데도 시험 주관사인 국립국제교육원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A씨와 알선책 2명, 부정 시험 응시자 18명 등 21명은 지난 15일 김해공항으로 입국했고, 현장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A씨와 알선책 2명 등 모두 3명을 곧바로 구속했다.  부정 시험 응시자 18명은 불구속 입건했고 곧 추방할 방침이다. 또 한국에서 산업기술교육센터를 연결시켜주고 행정업무를 봐 준 이모(29)씨와 이모(여·44)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한국어능력시험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기술연수비자를 발급받은 산업연수생들이 한국으로 입국하자마자 김해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부산경찰청]

한국어능력시험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기술연수비자를 발급받은 산업연수생들이 한국으로 입국하자마자 김해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부산경찰청]

경찰은 A씨가 이번 사건 뿐 아니라 또다른 취업비자를 발급할 때에도 부정한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6년부터 어학원을 운영한 A씨는 베트남 현지에서 일제 차량을 소유하고, 통장에 4000만~5000만원의 현금이 있을 정도로 갑부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병수 수사대장은 “한국어능력시험을 한번 치를 때마다 2400~2500명의 베트남인들이 시험을 치를 만큼 수요가 많다”며 “지난 1월 비자 취득 요건에 한국어능력시험이 도입되자마자 이같은 범죄가 발생한 것을 보면 유사한 범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 등 관련기관의 협조를 받아 수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