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5시쯤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의 한 24시 인형뽑기방. 일용직 건설노동자 A씨(38)가 환한 조명이 켜진 인형뽑기방 안으로 들어섰다. 무인으로 운영돼 자신을 제외하곤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3남매 아빠 애들 생각에 우발적 범행 #100cm크기 리락쿠마 3개 훔쳐 도주한 혐의 #경찰, 절도혐의로 입건 상태
A씨는 매장 안을 살피더니 갑자기 뽑기 기계 위에 전시된 갈색의 봉제 곰 인형에 손을 댔다. ‘리락쿠마(휴식이라는 의미의 영어 ‘릴랙스’에 곰을 뜻하는 일어 ‘쿠마’의 합성어)’라는 이름의 인기 캐릭터 상품이었다. 높이가 100㎝쯤 되는 대형 인형이다. 온라인쇼핑몰에서 현재 9만6000원에 거래된다.
A씨는 우선 이 곰 인형 두 개를 인근에 주차해둔 자신의 소형차에 옮겨 실었다. 전시된 리락쿠마를 누군가 가져가지 못하게 한 잠금장치는 없었다. 이후 그는 다시 뽑기방으로 들어와 한 개를 마저 안고 나갔다. 인형이 그만큼 커서다.
인형뽑기방 업주는 다음날 리락쿠마 세 개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인형뽑기방 내부를 비추는 폐쇄회로TV(CCTV) 분석 등을 통해 지난 17일 A씨를 붙잡았다.
A씨는 경찰에 “평소 아이들에게 선물을 못 해준 것이 미안해 그랬다”며 범행을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 그는 부인과의 사이에 5살·1살 남자아이와 3살 여자아이를 둔 다둥이 가장이다.
A씨는 범행 당일 술을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집으로 향하던 중 인형뽑기방의 조명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자 평소 세 남매에 대한 생각에 술기운까지 더해져 우발적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A씨가 훔친 리락쿠마는 현재 경찰이 압수 중이다. 검사 지휘가 끝나는 대로 피해자에게 돌려줄 계획이다. 경찰은 A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음주운전은 당시 음주 수치 등 증거가 없어 입건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극심한 생활고를 겪을 정도의 형편도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인형뽑기방 처럼 무인으로 24시간 운영되는 곳은 범죄 표적이 되기 쉽다”며 “특히 매장 안에 현금이 이용되고 보관까지 돼 더욱 그런데 업주들이 무인경비 가입 등 범죄 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평경찰서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인형뽑기방 5곳을 대상으로 범죄 예방을 위한 안전진단 활동을 벌였다.
가평=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