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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차 핵 실험 후 800만 달러 인도적 지원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따른 여진(餘震)이 대북 인도적 지원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14일 북한에 국제기구를 통해 800만 달러(약 90억원) 상당의 의약품과 긴급 식량을 지원키로 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같은 여론에 청와대와 통일부, 외교부 관계자들이 각각 나서 배경 설명을 하며 진화에 나섰다.
 ①인도적 지원에 북한 반응할까=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은 충분하게 모니터링이 가능한 문제”라며 “고심을 많이 한 끝에 핵문제와 같은 정치ㆍ군사적 분야와 인도적 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다루는 게 맞다는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이 단순한 인도적 차원을 넘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통합과 비핵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방향을 이행하는 차원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도 국회 강연에서 “북한 핵 동결을 전제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쌍 잠정중단’도 고려해야 한다”며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려운 얘기다.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핵화와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한국이 국제사회에 공여해 지원하는 것에 대해 북한이 반길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②시급한가, 시기상조인가= 통일부 당국자는 “유엔은 북한 인구 2490만명 중 1800만명가량을 식량부족이나 영양결핍 등을 겪는 취약인구로 규정했다”며 “1300만명은 긴급지원 대상”이라고 밝혔다. 특히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한국(3명)의 8배가 넘는다고 한다. 이 당국자는 지원 결정 시기와 관련해선 “수 개월전부터 국제사회에서 대북 지원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며 “북한 핵실험(3일) 이전에 지원을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무리 북한 사정이 급하더라도 6차 핵실험 강행, 이에 따른 국내외 여론을 감안하면 시기를 조절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한 점을 반대할 수는 없지만 지원에는 타이밍이 있다”며 “북한이 안받겠다는데 준다는 게 어색하고, 인도적 지원에도 인권의 개념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③국제사회와도 엇박자=통일부 당국자는 “언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이 운전석 역할을 하려면 다소 무리한 결정이 필요하다”며 "엄중한 상황에서 채택된 새 안보리(2375호) 결의도 인도적 지원을 막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또 "미국과 일본 등에 이번 건에 대해 사전에 설명했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북한에 대한 압력을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3일 핵실험 등 북한이 도발행동을 계속하는 지금은 대화 국면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북한에 대해 최대한 압력을 가할 때”라며 “국제사회가 결속해 명확한 의지를 보여주는 가운데, 북한에 대해 압력을 훼손하기 쉬운 행동은 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국 정부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대북지원 발표 전날인 13일 외교ㆍ통일ㆍ국방ㆍ기획재정ㆍ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참석해 새 안보리 결의 이행방안을 위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대북제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집행할 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결국 외교부 주관으로 제재 실행방안을 고민한 다음날 통일부는 제재의 틈새로 여겨질 수 있는 대북 지원에 나서기로 한 모양새다. 논란이 일자 통일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지원시기와 내역은 남북관계 상황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정용수·박유미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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