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20년 전의 첫 만남을 생각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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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3국
[제1보 (1~24)]
白.李昌鎬 9단 | 黑.曺薰鉉 9단

이창호9단이 2대0으로 앞서간다. 서봉수9단이 그 소식을 듣고 피식 웃는다.

이제 조훈현9단이 이기는 길은 나머지 세판을 모두 이기는 길뿐. 이창호에게 3연승한다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어서 徐9단은 그렇게 웃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던 소년 이창호가 처음 曺9단을 만난 것은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曺9단은 어린이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이 소년과 두점으로 시험기를 두고 있었다.

체구는 약간 뚱뚱하고 눈은 졸린 듯 멍한데 무얼 물으면 눈을 아래로 깔고 모깃소리로 달싹인다.

曺9단은 그때부터 한동안 이 소년의 천재성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했다. 이 소년의 바둑은 느렸고 신중했으며 번득이는 맛이 없었다.

늑골을 파고드는 묵직한 힘이 있었지만 그가 보아온 천재들은 이렇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曺9단은 이 소년이 자기의 적수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더구나 불과 7, 8년 만에 자신의 아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7월 28일, 두 운명적인 사제는 다시 마주앉았다. 한국기원 4층 대국실, 오전 10시.

흑을 쥔 曺9단이 찻잔을 기울이며 우상귀에 경쾌하게 첫수를 두었고 정각에 대국장에 나타난 李9단은 이마를 훔치며 느릿하게 한수를 놓는다. 유수처럼 흘러간 세월 속에서 숱하게 보아온 풍경이다.

오늘은 李9단이 빈 귀를 놔둔 채 즉각 4로 걸쳐 변화를 일으켰다. 백8로는 '참고도1'과 같은 수순도 자주 두어진다.'참고도1'이 실리적이라면 실전의 백8은 좀더 두터운 수법.

12로 걸쳐갈 때 曺9단은 13으로 먼저 부딛힌 다음 15로 협공했는데 曺9단은 요즘 이 수법에 부쩍 재미를 붙였다. 16은 강렬하고 예리한 느낌을 주는 수다. 평범하게 둔다면 '참고도2'인데 이 그림은 백 쪽이 너무 무덤덤해 보인다고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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