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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호텔] 진짜 제주도를 맛보다 200년 고택에서의 하룻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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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진짜 제주도를 경험했다.  

제주도의 매력을 흠뻑 보여준 숙소 쏘그베. 제주도 애월 해변가에 있는 독채 펜션이다. 사진은 쏘그베의 대문. [사진 쏘그베]

제주도의 매력을 흠뻑 보여준 숙소 쏘그베. 제주도 애월 해변가에 있는 독채 펜션이다. 사진은 쏘그베의 대문. [사진 쏘그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가 그리도 좋다하는데 사실 난 그동안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여름 휴가에서 진정한 제주도를 발견했다. 200년 된 제주도 옛집을 정성스럽게 수리해 만든 제주도 전통 돌집 '쏘그베’에서 말이다.

쏘그베의 안거리. 집 한채를 다 사용하는 독채 펜션 형태의 숙소다. 윤경희 기자

쏘그베의 안거리. 집 한채를 다 사용하는 독채 펜션 형태의 숙소다. 윤경희 기자

처음 제주도에 간 건 20대 초반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단합대회로 간 여행이 나의 첫 번째 제주도행이었다. 직장 상사들과 함께 한라산 등반 등 여러 곳을 갔지만 근무의 연장선상이라는 기분 탓이었는지 제주도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니 즐겁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제주도엔 고작 서너 차례 다녀온 게 전부다. 때론 출장, 때론 가족여행이었는데 남들은 그렇게도 좋다는 제주도가 나에겐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다. 좋은 호텔에서 묵고 좋은 음식을 먹었지만 과연 제주도만의 매력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2017년 여름휴가로 다시 한번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도를 좋아하는 가족의 취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또 친한 후배기자가(※그녀는 전문 여행기자다.) 얼마 전 제주도에 다녀와 ‘꼭 가보라’며 몇몇 숨겨진 여행지를 추천해준 영향이기도 했다.

여행지의 인상은 숙소가 좌우

쏘그베 안거리의 밤 모습. 낮과는 또다른 운치가 있다. [사진 쏘그베]

쏘그베 안거리의 밤 모습. 낮과는 또다른 운치가 있다. [사진 쏘그베]

숙소는 그 여행지의 인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아무리 좋은 곳이어도 숙소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 도시나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기 힘들다. 반면 특별히 다른 경험이 없어도 묵고 있는 숙소가 마음에 들면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이나 느낌이 좋아질 확률이 크다.
지난 여름 제주도 여행에서 이 규칙이 적용됐다. 쉽게 가는 가족여행이 아니었기에 이번엔 공들여 특별한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값비싼 현대식 럭셔리 호텔보다는 비싸더라도 제주도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줄 ‘제주도 전통 돌집’을 찾았다.
많은 곳을 검색하다 가장 평이 좋고 느낌이 좋은 곳을 골랐다. 애월에 있는 ‘쏘그베’였다. 다행히 가는 날 예약이 가능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선택할 수 있는 집이 두 가지였는데 야외 수영장을 사용할 수 있는 곳(밖거리)는 1박에 45만원, 수영장이 없는 곳(안거리)는 35만원이었다. 안거리의 경우 중문에 있는 특급호텔과 비슷한 가격대였지만 계획했던 숙박비보다 비싸 만 하루를 망설였다. 이마저도 언제 예약이 마감될지 모르는 상황인데다 제주도에서의 '특별한 하룻밤'을 생각해 큰 마음을 먹고 예약했다.
하지만 ‘너무 비싼 곳을 예약한 게 아닐까’라는 일종의 죄책감은 바다를 마주한 쏘그베의 돌담을 본 순간 저 멀리로 날아갔다. 검정 돌담으로 둘러 쌓인 아담한 집은 밖에서 보기에도 고풍스러우면서도 풋풋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오래된 나무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순간,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이게 바로 제주도였구나.’

200년 옛집 개조한 전통 돌집 

쏘그베는 200년 된 옛날 집을 고쳐 만든 독채 펜션이다. 이름 쏘그베는 외래어 같지만 실은 ‘속에’라는 제주 방언이다. 내부 구성은 안채와 바깥채로 나뉜 두 채의 집과 그 사이에 있는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건물 이름 역시 제주 방언으로 지어 안채는 ‘안거리’, 바깥채는 ‘밖거리’라 부른다. 여기에 대문간(이문간)을 포함하면 제주의 전통적인 배치형식인 ‘세거리 집’이 된다. 안거리에는 부모님이, 밖거리에는 결혼한 자식이 살던 주거 형태다.
제주도 토박이로 건축 일을 하는 문정미씨가 자신의 세컨드 하우스로 직접 설계하고 하나하나수리해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워낙 오래된 고택이라 수리를 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부실한 벽을 허물어 튼튼하게 다시 만들고 쓰러져가는 지붕이며 기둥 하나하나를 다시 손보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쏘그베의 공사 당시 모습을 안거리 화장실 안에 걸어놨다. 허물어져가는 곳을 다듬고 벽을 터 툇마루 창을 냈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니 주인이 공을 참 많이 들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윤경희 기자

쏘그베의 공사 당시 모습을 안거리 화장실 안에 걸어놨다. 허물어져가는 곳을 다듬고 벽을 터 툇마루 창을 냈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니 주인이 공을 참 많이 들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윤경희 기자

돌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문씨는 “제주도 토박이지만 동네마다 돌과 흙 색깔이 다른 걸 쏘그베를 만들면서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돌집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면서 살기에 편한 집을 만들고 싶었는데 모자란 돌을 다른 곳에서 가져오니 색이 너무 달라 쓸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애월에 사는 삼촌과 함께 그 동네를 돌아다니며 돌을 하나씩 구했고 흙은 그 집에서 나온 흙을 다시 정제해 썼다. 집을 다 완성했는데도 돌이 모자라 바깥 돌담은 한참 후에야 다 쌓을 수 있었다. 문씨는 어렵게 집을 완성하고 1년 정도 시간을 보냈다. 친구며 지인들을 초대하기도 했는데 이곳에 와본 사람들이 '아깝다'며 펜션으로 활용하라는 권유가 많아 2015년부터 펜션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안거리의 화장실. 왼쪽의 돌로 된 입구는 욕실 압구다. [사진 쏘그베]

안거리의 화장실. 왼쪽의 돌로 된 입구는 욕실 압구다. [사진 쏘그베]

안거리의 욕실. 3명은 거뜬히 들어가는 크기다. 허브 잎을 준비해줘 뜨끈한 허브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사진 쏘그베]

안거리의 욕실. 3명은 거뜬히 들어가는 크기다. 허브 잎을 준비해줘 뜨끈한 허브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사진 쏘그베]

툇마루에서 차 한잔 바람 한자락

안거리 집 안쪽의 툇마루. 주인이 직접 만든 손뜨개 레이스 커튼과 전통염색으로 만든 이불이 멋스럽다. 윤경희 기자

안거리 집 안쪽의 툇마루. 주인이 직접 만든 손뜨개 레이스 커튼과 전통염색으로 만든 이불이 멋스럽다. 윤경희 기자

창문을 열면 집안과 밖의 툇마루가 연결된다. [사진 쏘그베]

창문을 열면 집안과 밖의 툇마루가 연결된다. [사진 쏘그베]

쏘그베는 대문에서 정원까지 들어가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정성스럽게 키운 게 분명한 정원의 나무며 꽃, 정원 곳곳에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리고 대청마루에 준비해 놓은 둥근 양철 테이블까지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다. 카메라 셔터를 저절로 누르게 되는 풍경이 그득했다.
우리가 묵을 안거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검정색 ‘말표’ 고무신 두 켤레가 손님을 맞았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걸 구했을까’ 싶은, 여느 곳에선 보기 힘든 검정 고무신이 현관에 나란히 놓인 모습이 신기하고 예뻐 또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우리를 맞이한 검정고무신. 여기는 셔터만 누르면 모든 게 그림이 된다. 윤경희 기자

우리를 맞이한 검정고무신. 여기는 셔터만 누르면 모든 게 그림이 된다. 윤경희 기자

안거리 내부는 돌과 흙을 잘 다듬어 만든 집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천장에는 원래 이 집의 것이었던 오래된 목조 서까래와 조름보(서까래를 지탱하는 나무)가 보이도록 만들었다. 옛 부엌이 있던 자리엔 주방을 그대로 배치하고 작은 구들이 있었던 곳엔 화장실과 가족탕을 만들었다. 큰 구들이 있던 자리엔 침실을 뒀다. 곡식을 저장했던 광이 있던 자리는 야외 바비큐장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이곳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게 했는데 주변의 민원과 화재 위험 때문에 지금은 가스레인지로만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
집안의 가구는 모두 낡은 원목이다. 4인 가족용으로 준비된 더블침대며 테이블, TV장까지 주인 문씨가 평소 사 모았던 것들을 그대로 가져다 놨다. 침대에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면 침대보가 정갈하게 씌워져 있고 큼직한 유리창에는 손뜨개로 뜬 커튼을 드리웠다. 모두 문씨가 만든 것들이다.
직접 살려고 만든 집이다보니 집의 완성도는 물론이거니와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꼼꼼한 디테일이 놀랍다. 상업적으로 지은 호텔이나 펜션의 허술함에 실망한 적이 많았던 터라 벽과 바닥의 완벽한 마무리는 물론이고, 깔끔하고 쓰기 편하게 만든 싱크대와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거실 중앙에 놔둔 식탁 배치 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싱크대에 마련된 컵. 손으로 자수를 놓은 면 덮개를 만들어 덮어놨다. 윤경희 기자

싱크대에 마련된 컵. 손으로 자수를 놓은 면 덮개를 만들어 덮어놨다. 윤경희 기자

이곳 주인의 세심함을 결정적으로 느낀 건 싱크대였다. 다양한 용도의 컵 여러 개를 놔두고 그 위에 먼지가 쌓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자수를 놓은 하얀 천을 덮개로 덮어놓은 모습이 주인이 얼마나 꼼꼼한 사람인지 짐작케 했다.

이곳에서의 대부분을 보낸 툇마루. 앞에 있는 족욕기에 발을 담그고 차 한잔을 마시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윤경희 기자

이곳에서의 대부분을 보낸 툇마루. 앞에 있는 족욕기에 발을 담그고 차 한잔을 마시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윤경희 기자

안거리 툇마루에서 바라본 밖거리. 윤경희 기자

안거리 툇마루에서 바라본 밖거리. 윤경희 기자

무엇하나 흠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를 꼽는다면 집안에서 밖으로 이어져 있는 툇마루다. 반들반들하게 광이 나는 툇마루에 앉아 준비된 작은 양철 식탁에 찻잔을 올려놓고 앉아 있자니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여유가 느껴졌다. 마루 앞에는 큼직한 나무 속을 파내 만든 족욕탕이 있는데 여기에 차가운 물을 담아 발을 담그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맞은 편 툇마루와 마주보고 있는 게 좀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마당을 중심으로 두 가구가 서로 대화기 좋은 거리를 둔 제주식 전통 가옥 형태라고 하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윤경희 기자, 쏘그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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